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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기행] <10>역사문화 명산 ④면산좋은 글 2023. 6. 5. 23:55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기행] 역사문화 명산 ④면산 산시성 제슈시 면산 절벽을 따라 만든 도로. 버스가 커브를 돌 때마다 오금이 저린다. 내가 황주에 온 이후(自我來黃州) 이미 세 번째 한식이 지났구나(已過三寒食) 해마다 지나쳐 가는 봄날이 안타까워라(年年欲惜春) 봄날은 가도 이제 아쉬움조차 필요 없나니(春去不容惜) 소동파가 지은 ‘한식첩(寒食帖)’의 제1수 첫 4행이다. 문자옥(文字獄, 중국 왕조에서 황제나 체제 비판 글을 쓴 자를 벌하는 것)을 겪고 황주로 좌천된 40대 중반의 소동파는 우울한 심정으로 불평했다. 제2수에서도 임금의 ‘구중’과 조상의 ‘만리’를 한탄하더니, 싸늘하게 식은 재로 변한 자신의 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129자 한 폭 시첩은 처량한 마음을 절제된 행서로 담은 소동파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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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소(儉素)좋은 글 2023. 6. 4. 10:44
● 검소(儉素) 퇴계가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양성한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지자, 일찌기 영의정(領議政)의 벼슬을 지낸 바 있는 쌍취헌 권철(雙翠軒 權轍)이 한양에서 퇴계를 만나고자 도산서당을 찾아 내려오게 되었다. 권철은 그 자신이 영의정의 벼슬까지 지낸 사람인 데다가 그는 후일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幸州山城)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하여 만고명장(萬古名將)의 이름을 떨친 권률(權慄) 장군의 아버님이기도 하다. 권률(權慄) 장군은 선조 때의 명재상(名宰相)이었던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의 장인이기도 했다. 서울서 예안까지는 5백50리의 머나먼 길이다. 영의정까지 지낸 사람이 머나먼 길에 일개 사숙(私塾)의 훈장을 몸소 찾아 온다는 것은, 그 당시의 관습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