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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노자 <도덕경> 2장철학/동양철학 2023. 7. 29. 09:37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 공을 세우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노자의 말이다(2장). 비록 내가 씨를 뿌리고 심지만, 그것을 반드시 내가 거두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다. 성공했다는 것을 내 노력이나 공로임을 강조하는 마음은 세상을 황폐하게 한다. 성공한 것이 자기 공로가 아니라 은혜임을 받아들이고, 그 공로의 혜택을 흘러가게 하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마음이 '공성이불거'의 마음이다. 만일, 공성이불거의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 공동체는 훨씬 더 깨끗하고 아름답고 풍성하리라. 미국에 유학을 갔을 때의 일이었다. 학교로부터 등록금과 기숙사비 뿐 아니라, 생활비까지 받아서 생활했다. 차도 없고 모든 것이 불편한 상황에서 먼저 간 선배들이 물심양면 도와주었다. 내가 너무도 황공해하고 미안해할 때 그분들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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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대방록 (明夷待訪錄)/황종희(黃宗羲1610~1695)철학/동양철학 2023. 7. 29. 09:24
명이대방록 (明夷待訪錄) 만민(萬民)을 위하여 전제군주제를 비판하다 전제군주제의 전통을 비판하다 인구와 영토의 방대한 규모에서 오늘날 아시아 제일의 대국인 중국은 2천 년 이상 지속된 전통적 제국(帝國)의 유산 위에 세워진 국가이다. 그 제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정교하게 다듬어진 전제(專制)군주 체제를 토대로 해서 장기적 지속을 누리고 방대한 규모의 인구와 영토를 통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황제(皇帝)의 전제주의 전통에 대해 가장 철저히 분석해 비판한 책으로 유명한 것이 1662년에 나온 황종희(黃宗羲)의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이다. 그 시기는 19세기 말 황제 체제가 근대화의 장애 요인으로 본격적 비판을 받아 붕괴되기 꼭 250년 전이었다. 『명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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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영남의 고을 별 문과 급제자역사/한국사 2023. 7. 29. 08:52
조선조 영남의 고을 별 문과 급제자 조선조 문과에 급제한 영남 인물은 제가 조사 한 바로는 1884명 이였습니다. 출신지 별 급제자의 자세한 인적 사항은 정리 중에 있으며 우선 고을별 급제자를 대강 정리해 보았습니다. 간혹 급제자의 출신지가 다르게 되어있는 부분도 있으나 급제 당시 거주지와 그 뒤의 거주지가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해당 고을의 인구수를 감안하였으면 합니다. 장달수 예) 안동대도호부의 인구는 을묘년 1735년(영조11) 기준 호구 1만5천5백97호. 인구 66,929명. 남자: 26,261명. 여자: 40,668명. 이였고 저희 고향 인동현은 을묘년 1759년 영조35년 기준 호구: 4,105호. 인구: 16,739명. 남자: 7,048명. 여자: 9,691명이 였습니다 고을명 급제자수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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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권참찬묘도(題權參贊墓道)/이황(李滉)한국한시 2023. 7. 29. 01:31
제권참찬묘도(題權參贊墓道)/이황(李滉) 明夷蒙難豈非天 茂柏深松鎖翠烟 節行他年應有史 文章千古恨無傳 《退溪集 續集 卷2》 어두운 임금 만나 고난을 당한 것이 어찌 운수가 아니랴, 송백 우거진 무덤에 푸른 안개가 덮였네. 절조 높은 행실은 뒷날 기록으로 남겠지만, 천고에 전할 문장은 남은 게 없어 한스럽네. 권주 (權柱1457-)1505)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지경(支卿), 호는 화산(花山). 권심(權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항(權恒)이고, 아버지는 권이(權邇)이며, 어머니는 송원창(宋元昌)의 딸이다. 1474년(성종 5) 진사시에 합격, 1481년 친시 문과(親試文科)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482년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를 역임했고, 이후 강경 문신(講經文臣)으로 활약하였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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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후소[ 繪事後素 ]경서/논어 2023. 7. 28. 05:27
회사후소[ 繪事後素 ]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는 뜻으로,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회사후소(繪事後素)'는 그림은 먼저 바탕을 손질한 후에 채색한다는 뜻으로, '사람은 좋은 바탕이 있은 뒤에 문식(文飾)을 더해야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논어(論語)》의 〈팔일(八佾)〉에 나온다. 자하(子夏)는 공자의 제자로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이며, 시(詩)와 예(禮)에 통달했는데, 특히 예의 객관적 형식을 존중하는 것이 특색이다. 자하가 공자에게 "선생님, '교묘한 웃음에 보조개여, 아름다운 눈에 또렷한 눈동자여, 소박한 마음으로 화려한 무늬를 만들었구나' 하셨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그림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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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위 (Azwi)"/(희망)좋은 글 2023. 7. 28. 04:25
♥"아즈위 (Azwi)"☜(희망) 1964년, 종신형을 선고 받고 절해(絶海)의 고도(孤島) '루벤섬' 감옥으로 투옥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감옥은 다리 뻗고 제대로 누울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좁았으며 변기로 찌그러진 양동이 하나를 감방 구석에 던저 넣어 주었습니다. 면회와 편지는 6개월에 한번 정도만 허락 되었으며 간수들은 걸핏하면 그를 끌어다가 고문하고 짓밟고 폭력을 가했습니다. 이미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지위는 상실되었고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끌려간 후,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살던 집을 빼앗기고 흑인들이 모여사는 변두리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감옥살이 4년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듬해 큰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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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복 여사를 회고(回顧)하다◁좋은 글 2023. 7. 28. 04:23
▷강금복 여사를 회고(回顧)하다◁ -새내기 교사의 죽음을 접하고- 강금복(姜今福:1911~2001) 여사는 서울대 총장ㆍ국무총리를 지낸 이수성(李壽成:1939~)씨의 모친이다. 강 여사는 울산 갑부집의 1남2녀 중 맏딸로 태어나 경북고녀와 일본여대를 나왔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엘리트 여성이었다. 24세 때 경기여고에서 교생실습을 하던 중 오빠(강정택 전 농림부 차관, 납북)의 중매로 동경제대 법학과를 나온 이충영(李忠榮)변호사와 결혼한다. 이 변호사는 일제 치하에서 판사로 재직하면서도 법정에서 꼭 한복 두루마기에 고무신을 신은 채 재판을 했고, 1943년엔 창씨 개명을 거부하고 법복을 벗었을 정도로 강직했다. 강금복 여사의 일생에는 이 땅 보통 어머니들의 인고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