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羌村 三首中第一首(강촌 3수중 제1수)당시 2022. 11. 11. 22:09
羌村 三首中第一首(강촌 3수중 제1수)
杜甫
峥嵘赤云西,日脚下平地。
柴门鸟雀噪,归客千里至。
妻孥怪我在,惊定还拭泪。
世乱遭飘荡,生还偶然遂!
邻人满墙头,感叹亦歔欷。
夜阑更秉烛,相对如梦寐。
겹겹히 펼쳐진 석양의 붉은 구름, 햇발은 구름을 뚫고 평지를 비춘다
사립문에 지저귀는 참새들, 돌아온 나그네는 천리길을 맺는다
아내와 아이는 놀라서 바라보다, 놀란가슴 진정하고 눈물을 닦는다
천하가 어지러워 곳곳을 헤메이다, 이렇게 살아 돌아온 것도 우연이라 할 것인데
이웃들은 담장가에 가득하고, 탄식소리 들리다 또 우는 소리 들리네
밤이 깊어 초를 들어 (그대를)바라 보니, 마주 앉은 지금이 꿈속인가 하노라
위의 시는 두보의 강촌삼수 중에서 첫번째인 제일수의 시입니다. 지난 번의 포스트에 올렸던 758년 늦봄에 장안에서 지은 곡강이수(曲江二手)보다는 조금 이른 시기인 757년 가을 그가 46세때에 지은 시로 추정됩니다. 이 시기에는 아직 장안성이 완전히 수복이 되지 않은 시점으로서 두보가 장안성을 탈출하여 섬서성 봉상의 행재소로 가 숙종을 알현한 공으로 정8품인 좌습유를 받았었다고 하는 것은 지난 번 시 소개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두보는 재상 중의 한명인 패장 방관을 변호하다가 숙중에게 미움을 사서 하옥까지 당하나 당시의 재상인 장호(张镐)의 도움으로 다시 관직을 회복하나 숙종의 미움은 여전하였고 이로 인해서 봉상의 임시 조정을 떠나 지금의 섬서성 북부 연안시 남부에 있는 부현 (富县/鄜州)으로 가서 전쟁 때에 헤어진 아내와 아이들을 찾으러 갑니다. 안사의 난이라는 국난이 생긴 후 두보는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 연안시 남쪽의 부현 그러니까 부주에 가족들을 미리 피난 시키고 자신은 조정과 합류하려고 하였는데 가족은 무사히 피난을 시켰으나 자신은 장안에서 안록산의 군대에 억류되었다가 이후 피신하여 숙종에게 관직은 얻었지만 미움을 받아서 반 강제적으로 관직은 유지한 채 가족을 찾으러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제 추측이지만 두보를 아껴 도와준 신임 재상 장호(张镐)가 황제의 미움을 피해 잠시 고향에 다녀오도록 방법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황제 숙종이 임시로 행재소를 꾸렸던 봉상(风向)과 부현 북부(富县 北部)의 거리를 한번 알아보았더니 대략 걸어서 364km정도가 되더군요.
고대 시대에 364km를 그것도 전란중에 걸어서 갔으니 두보가 시에서 말하는 귀객천리지(归客千里至)도 과장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두보의 일생을 살펴보면 이렇게 가슴아프고 애처롭고 서러운 일이 너무도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자신의 성격이 문제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의 시은 더할 것 없이 아름다우나 그의 삶은 절대로 본받고 싶지 않다고 해야할까요? 가끔 생각해 보면 정인군자이기는 하지만 자존심이 너무 세고 앞뒤가 꽉막힌 사람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야란경병촉,상대여몽매 (夜阑更秉烛,相对如梦寐: ye lan geng bing zhu, xiang dui ru meng mei) 즉 "밤이 깊어 초를 들어 (그대를)바라 보니, 마주 앉은 지금이 꿈속인가 하노라"라는 표현은 정말로 두보가 아내와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절절하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의 성격을 떠나서 얼마나 다정하고 아내를 사랑하는지 잘 표현되어 있네요. 하도 꽉 막혀서 때로는 고구마 같고 밉기도 하지만 그 절절하고 아름다운 싯구를 대하는 순간 그에 대한 아쉬움이 저절로 없어지고 그의 마음과 하나가 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가 시성이라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755년 11월 늦가을에 안사의 난이 일어나고 두보가 그 무렵 가족을 강촌으로 피난 시킨 후 다시 757년 가을에서야 아내와 아이들을 찾으러 간 것이니까 꼬박 2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것입니다. 그 동안 안록산에게 한번, 숙종에게 한번 구금까지 당한 적도 있고 목숨걸고 탈출한 적도 있으며 황제에게 미움을 받기도 했는데 겨우 겨우 복직하여 재상 장호의 주선으로 가족을 찾아 천리길을 걸어서 떠난 것이니까 그 고초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아래 사진과 같은 곳들을 걸어서 지났을 겁니다.
위의 사진은 두보가 걸어갔던 지역 근처를 오래 전에 자동차로 여행할 때 찍은 사진들입니다. 봉상 근처도 있고 연안 근처인 부현 근처도 있습니다. 약간 거리가 있는 구채구 사진 한 장도 이때 차로 여행한 것이라 같이 들어 갔네요. 아무튼 머나먼 길 걸어서 가족을 찾아가서 재회를 하였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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