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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가 비록 편안해도 전쟁을 잊어버리면 반드시 위기가 온다.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를 생각하게 하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 역사상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낸 ‘3대 영웅’으로 고구려의 을지문덕, 고려의 강감찬(姜邯贊, 948~1031), 조선의 이순신을 든다.
강감찬은 고려 정종·현종 재위 시의 문신으로 948년 금주(衿州·서울 낙성대 인근)에서 문곡성(文曲星·학문을 관장하는 별)의 빛을 타고 태어났다. 아버지는 태조 왕건을 도와 벽상공신이 된 강궁진(姜弓珍)이다. 36세(983, 성종 3)에 문과에 장원 급제했다.
‘귀주대첩(龜州大捷)’ 이전에 이미 두 번의 거란(요나라) 침입이 있었다. 고려는 수십만 대군을 이끈 소손녕의 ‘거란 1차 침입(993년 10월)’ 때 서희(徐熙)의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었다. 하지만 거란은 뒤늦게 이를 후회하여 강동 6주를 되돌려 받기 위한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다.
1010년 11월. 거란의 성종은 ‘강조의 정변’(목종 퇴위, 현종 등극)을 구실로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다(거란 2차 침입). 총사령관 강조는 크게 패해 개경이 함락되고, 현종은 작전상 나주까지 피신하였다.
거란은 승리하자 고려왕이 거란 조정에 들어와 예를 올리고, 강동 6주를 다시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거란군은 현종의 친조(親朝)를 조건으로 이듬해 1월에 철수하였다.
강감찬은 북방의 세력 관계를 고려할 때 언젠가 거란이 다시 침입한다고 예측했다. 그리하여 전란 이후에 개경 외곽에 성곽을 쌓는 등 튼튼한 국방에 전력(專力)했다. 이는 임진왜란을 겪고도 외침(外侵)에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아 병자호란의 국치(國恥)를 당한 조선의 위정자들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강감찬의 ‘유비무환(有備無患) 정신’은 시공을 초월하여 큰 교훈을 준다. 이후 현종은 거란의 침입에 대비, 5만 명이 안 되던 군사를 20만 명으로 증원했다.
마침내 1018년(현종 9) 12월. 거란은 소배압(蕭排押)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왔다(거란 3차 침입). 거란군은 압록강을 건너자 흥화진(興化鎭, 평북 의주)을 우회하여 남하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적의 작전을 간파한 70세의 상원수 강감찬은 삼교천(三橋川) 상류의 둑을 막고 기병 1만 2천을 매복시켜 수공(水攻)을 펼쳐 거란군 1만여 명을 죽이는 큰 전과를 올렸다(흥화진 전투).
1019년 2월. 강감찬과 병마판관 김종현이 압록강 근처의 귀주(평북 구성)에서 거란군을 전멸시켜 버렸다. 살아서 돌아간 사람은 수천 명에 불과했다. 비바람의 방향이 ‘남풍(南風)’으로 바뀌어 거란군이 있는 북쪽으로 휘몰아쳐 대승에 도움을 주었다(귀주대첩). 제갈량이 ‘동남풍’을 이용해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듯이, 강감찬은 ‘남풍’을 이용해 ‘귀주대첩’의 기적을 이룬 것이다.
26년에 걸친 ‘여요(麗遼)전쟁’이 끝나자 동아시아는 고려·송·요가 정립하게 되어 고려는 ‘200년 평화의 길’을 열었다. 평화란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실증된 것이다.
668년 11월 18일. 문무대왕은 삼한일통 후 전쟁에서 죽은 자를 포상했다. 1024(현종 15)년 6월 6일. 강감찬은 문무대왕을 본받아 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의 뼈를 집으로 봉송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는데, 이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전몰군인에 대해 제사를 지낸 것으로 ‘현충일’의 기원이 되었다.
한국사의 황금시대를 연 강감찬은 1030년에 문하시중이 되었고, 2년 후 84세로 타계하였다. 시호는 인헌(仁憲)이다. 살아서는 ‘귀주대첩’의 영웅이었고, 죽어서는 설화 속 주인공으로 신격화된 강감찬 장군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落星傳說信英雄(낙성전설신영웅) 별이 떨어지는 전설의 영웅 신화를 믿었고
有備來侵戰勝功(유비내침전승공) 거란군의 내침에 대비해 승리하여 공을 세웠네
妙算權謀窮地極(묘산권모궁지극) 적을 막을 묘책과 계략은 지형과 극을 통달했고
神機術數貫天中(신기술수관천중) 귀신같은 재주와 술책은 하늘의 한가운데를 뚫었네
龜州大捷南風動(귀주대첩남풍동) 귀주에서의 큰 승리는 남풍의 조력을 받았고
興化冤魂北氺紅(흥화원혼북수홍) 흥화진에서 죽은 원혼은 강물을 붉게 물들였네
符合豫言延國運(부합예언연국운) 문곡성의 예언은 적중해 나라의 운명을 구했고
生而泰斗死推崇(생이태두사추숭) 살아서는 태산북두요 죽어서는 받들어 숭배하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출처 : 일요서울i(http://www.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