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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의 날'과 석주 이상용좋은 글 2022. 11. 23. 20:41
11월 17일은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 순국한 분들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순국선열의 날’이다. 이 날은 치욕스러운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이기도 하다.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을사늑약의 역사적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독립투사들의 넋과 충성심을 기리는 날로 정하였다.
지난 좌파 정권 5년 동안 국가정체성은 무너졌고, 순국선열들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고 지하에서 통곡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북한 김영남 앞에서 공산주의자 신영복을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라 했고, 2019년 6.25 전쟁 전범(戰犯) 중의 하나인 “김원봉을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라고 했다.
1961년 ‘원호청’ 출범 이후 60여 년 만에 국가보훈처의 부(部) 승격 추진을 환영한다. 윤 대통령도 “보훈이 안보요, 국가정체성”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제 보훈부는 좌파의 숙주 노릇을 한 친북 행태에서 벗어나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의 정신적 기반을 만드는 ‘체제수호’ 역할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간도의 신흥무관학교 교가는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1858~1932)이 지었는데, 1절을 보면 중국 대륙의 서북, 서남 전체가 한민족의 고토이자 활동무대였음을 상기시킨다. 중국은 아직 어리석기에 단군의 자손인 우리가 업어 길렀고, 아직 문명에 눈 뜨지 못한 섬나라 일본은 젖 먹여 길렀다고 한다.
“서북으로 흑룡태원(산서성) 남의 영절(절강성)에/ 여러 만만 헌원(軒轅, 한족 최초 임금) 자손 업어 기르고/ 동해 섬 중 어린 것들(일본인) 품에다 품어, 젖 먹여 기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
이상룡·이회영·허위 선생의 가문은 자랑스러운 ‘항일운동 3대가문’으로 불리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다. 이상룡은 일제강점기의 거유(巨儒)요, 독립운동가다.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만초(萬初), 호는 석주이다. 안동시 임청각(臨淸閣)에서 이승목(李承穆)과 부인 권씨 사이의 3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임청각은 1519년(중종 14)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낙향해 낙동강변에 지은 집으로,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시구를 빌려 이름 지었다. 고성이씨 대종택으로 석주를 비롯해 아들과 손자·며느리 등 3대에 걸쳐 독립운동가 10명을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다.
석주는 퇴계 학통을 계승한 김흥락(金興洛)의 문하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본격적인 의병활동에 나섰다. 이후 혁신적 유림들과 함께 근대교육기관을 설립하고 계몽활동에 뛰어들었다.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석주는 54세에 조상의 신위와 위패를 땅에 묻었다. 그리고 전답과 99칸짜리 집을 모두 처분한 후 가솔과 친척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석주는 이회영, 이시영과 함께 간도에서 독립군 기지 개척에 힘썼으며, 신흥무관학교 설립 등을 통해 무장독립투쟁을 위한 독립군 양성에 전념했다. 1919년 4월. 군정기관으로 조직된 서로군정서에서 독판(최고 대표)에 선임되었다.
1925년 9월. 석주는 임정 초대 국무령에 추대되어 여러 분파로 갈린 독립운동계의 통합을 위해서 헌신하였다. 1932년 5월. 석주는 태평성세가 되면 돌아가리라던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길림성에서 74세로 순국했다. “독립이 되기 전에는 내 시신을 고국에 가져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30년 후 정부는 석주에게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했고, 1990년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해 현충원 임정요인 묘역에 안장했다. 평생을 오로지 조국 광복을 위해 멸사봉공(滅私奉公)한 선비. 나라 잃은 지도층의 의무를 오롯이 보여준 석주 선생의 장엄한 생애를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閉家向北萬難俱(폐가향북만난구) 나라 망하자 가솔과 만난을 겪으며 국경을 넘었고
露宿風餐散髮孤(노숙풍찬산발고) (만주에서의) 풍찬노숙에 풀어 헤친 머리 외롭네
破敵歸鄕能自主(파적귀향능자주) 일본을 깨트린 후 귀국해 자주독립국 국민 되고
殺身報國不爲奴(살신보국불위노) 보국 위해 목숨 버릴 수 있어도 노예는 될 수 없네
校歌一片衝肝膽(교가일편충간담) 신흥무관학교 교가 한 구절은 속마음을 찔렀고
別哭丹心警我徒(별곡단심경아도) 조국 떠날 때 울은 단심은 가솔들을 놀라게 했네
光復未成當落魄(광복미성당낙백) 광복을 이루기 전에 자신이 넋을 잃었고(순국했고)
嗚呼統領永先驅(오호통령영선구) 아, 임정 국무령은 영원히 선구자 되리라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출처 : 일요서울i(http://www.ilyoseoul.co.kr)'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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