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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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儉素) / 퇴계와 권철역사/한국사 2023. 6. 13. 00:58
☆검소(儉素) / 퇴계와 권철 퇴계가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양성한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지자, 일찌기 영의정(領議政)의 벼슬을 지낸 바 있는 쌍취헌 권철(雙翠軒 權轍)이 한양에서 퇴계를 만나고자 도산서당을 찾아 내려오게 되었다. 권철은 그 자신이 영의정의 벼슬까지 지낸 사람인 데다가 그는 후일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幸州山城)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하여 만고명장(萬古名將)의 이름을 떨친 권률(權慄) 장군의 아버님이기도 하다. 권률(權慄) 장군은 선조 때의 명재상(名宰相)이었던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의 장인이기도 했다. 서울서 예안까지는 5백50리의 머나먼 길이다. 영의정까지 지낸 사람이 머나먼 길에 일개 사숙(私塾)의 훈장을 몸소 찾아 온다는 것은, 그 당시의 관습으로서는 도저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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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조 명사들의 호(號) 정리역사/한국사 2023. 6. 11. 22:51
* 강세황 : 표암(豹菴), 표옹(豹翁) : “어려서부터 등에 ‘표범’처럼 흰 얼룩무늬가 있어서, 스스로 장난삼아 그렇게 호를 지었다.” 「표옹자지(豹翁自誌)」 김홍도의 스승. 문사(文士)였지만 시서화(詩書畵)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고 불렸던 문인화가였다. * 강희맹 : 사숙재(私淑齋) : ‘사숙(私淑)’이란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를 흠모해 홀로 그 학문과 도리를 배우고 익혔다’는 의미임. 맹자는 공자가 이미 사망한 후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의 학문은 공자를 사숙하면서 이룬 것’이라고 말함. 『맹자』 「이루하(離婁下)」편. 강희맹은 자신이 오직 성인을 본받아 학문을 익혔다는 사실을 말하거나, 자신의 학문과 예술은 홀로 터득한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냄. 세종에서 성종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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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학계 호평 최병헌의 영문판 《징비록》역사/한국사 2023. 6. 10. 21:17
미국 역사학계 호평 최병헌의 영문판 《징비록》 18년 동안 영문학 전공하면서 우리 역사와 눈으로 걸러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9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일본 큐슈의 무사들이 1868년에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키고 국제사회에 문을 연 뒤 먼저 추진한 사업이 북해도를 농업기지로 바꾸는 계획이다. 유신 8년만인 1876년에 삿포로 농학교를 설립해 운영한 것도 그 하나인데 이때 2기생으로 입학해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열심히 받은 2명의 동급생이 있었으니, 바로 우치무라 간조(內村監三 1861~1930)와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 1862~1933)다. ▲ 우치무라 간조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는 5년 만에 이 학교를 졸업한 뒤 3년 뒤 자비를 들여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신학공부를 하다가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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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전투(古昌戰鬪)역사/한국사 2023. 6. 10. 09:00
고창전투(古昌戰鬪) 병산전투지도 고려사 세가 고려 전기 안동 지역에서 고려 태조와 후백제 견훤사이에 일어난 전투로 병산전투(甁山戰鬪)라고도한다. 고창전투는 929년(태조 12년) 12월 후백제군에 의해 포위된 고창 지역을 구원하기 위한 고려의 원병 파견에서 시작되어 이듬해 정월까지약 두 달 동안 계속되었다. 고려군은 죽령을 넘어 풍기와 영주를 거쳐 봉화 방면으로 진행하여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를 거쳐 예안 지역에 이르러 저수봉전투에서 후백제군을 격파함으로써 전투가 시작되었다. 저수봉 전투에서 유금필이 이끄는 고려의 선봉대가 승리하자 왕건은 병산에 주둔하였고, 저수봉 전투에서 패한 후백제군은 후퇴해 석산에서 둔을 치면서 병산전투가 전개되었다.전투에 대한 전설을 살펴보면, 안동의 호족인 삼태사(김선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