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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여행] 소수서원 / 旣廢之學 紹而修之 / 기폐지학 소이수지역사/한국사 2023. 9. 17. 17:31
[영주여행] 소수서원· 학구재를 지나 사료관에서 소수서원의 중차대한 임무를 알다 / 旣廢之學 紹而修之 기폐지학 소이수지
旣廢之學 紹而修之
기폐지학 소이수지
이미 무너진 학문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
소수서원은 몇백그루가 됨직한 아름드리 소나무 숲의 진입로가 인상적이다.
https://m.blog.naver.com/asancriti/223211525177?referrerCode=1
[영주여행] 소수서원에는 학자수림이라는 근사한 소나무 숲길도 있다·학자수림/당간지주/은행나무/경렴정/경자바위/취한대..
우와 소나무 숲이라니! 박약회 제44차 유교문화학술대회는 영주지회주관으로 전국의 지회원들이 모여 9.13...
소수서원은 울창한 소나무숲과 5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 죽계천의 깨끗한 물길 등이 강학당-사당 등과 어우러져 기품 있고 수려한 경관을 담아낸다. 서원 옆을 흐르는 죽계천은 고려 시대의 경기체가 '죽계별곡'의 배경이자, 퇴계 선생이 '죽계구곡'을 이름 지은 곳이기도 하다. 서원은 사립 중고등교육기관으로(향교는 공립) 임금의 편액을 받으면 조세와 군역 등을 면제 받는 큰 혜택을 입었다.
소수서원은 본래 숙수사라는 사찰 터에 지어졌다. 숙수사는 부석사보다 더 큰 사찰이었으나 원나라 침략으로 절이 소실되고 지금은 당간지주와 몇군데의 주춧돌이 그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소수서원의 기숙사였던 학구재를 지나
소수서원 사료관으로 가고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 자리한 소수서원은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서원이며 한국의 최초의 사학으로 오늘날의 사립학교였다. 선비문화의 원류로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때의 유학자 안향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해 '백운동서원'을 지은 것이 그 효시다. 이후 퇴계 이황의 요청으로 명종이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려 1550년 최초의 사액서원이 됐다.
조선시대 향교가 지방 국립교육기관이라면 서원은 지금의 지방 사립학교에 해당한다. 각 서원에는 배향된 인물이 있어서 그의 덕망을 기리고 학풍을 이어갔다. 특히 서원은 유생들의 교육의 터전이자 정치 참여의 장이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사화로 인해 향촌에 은거하던 사림의 활동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소수서원 사료관은 소수서원에 대한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자 관련 자료를 정리하여 전시해 놓은 곳으로 소수서원의 역사와 전통 및 주요 배출인물, 그리고 강학과 제향을 주제로 다양한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旣廢之學 紹而修之
기폐지학 소이수지
이미 무너진 학문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
소수서원의 운영과 조직
우리나라 도학의 계보
선비촌으로 가는 일행들
우리나라 최초의 사학이라서 그런지 넓은 공간에 자리잡고 학문탐구와 기개를 높이는 심신수련의 장으로서도 충분했을듯 싶었다.
죽계교는 선비촌으로 가는 다리로 그당시는
학교 학생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마을이 있었고 월담하여 가끔 사고도 생기는 그런 주막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설이 있었다.
선비촌으로 건너가는 다리에서 그당시의 상황과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저기 보이는 다리밑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를 놓고 한참 동안 그럴듯한 새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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