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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종의 문학잡설(20)] 귀소(歸巢)의 ‘구석’과 ‘진초록 터널’에서
    좋은 글 2023. 5. 20. 21:53

    [김승종의 문학잡설(20)] 귀소(歸巢)의 ‘구석’과 ‘진초록 터널’에서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다음 시를 읽고 독자들은 화자(話者)의 심정에 금방 공감하며, 곧, 자신의 내면 한 구석에서 어렴풋하였다가 서서히 부각되는 같은 기존 심정을 자각하며 더욱 공감할 것 같다. 


     구석이 좋을 때가 있다
     고단한 하루가
     모두 물러나고
     조용히
     구석에 등을 기대며
     두 팔을 뻗으면
     이제 좀 살 것만 같은
     볕을 기다리는 작은
     꽃 한 송이 될 것만 같은

                            - 「구석이 좋을 때」/황현중 

      그렇다. 우리는 가끔 ‘구석이 좋을 때가 있다’. 아니다 자주... 우리의 삶은 사실 필요 이상 낭비로 지치기 쉽다. 시장(市場)에서 우리는 감정노동에 종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감정노동을 하고 있고, 삶을 지탱하고 보람을 느끼게도 하는 직무에 과잉과 시행착오도 저지르며, 자신의 대책이 옳거나 효율 높다고 여겨 남과 자신과 갈등하고, 동료와, 후배와 선배와의 관계에서 때로 마음에 파고드는 언행의 음양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신체도 마음도 피로해지고 개선을 시도해도 역시 쉽지 않다. 이런 우리는 화자처럼 혼자만의 작은 공간을 찾고 그 구석에서 자신을 의식하는 의식도 방출하며 ‘조용히’ 기지개를 켜면, 긴장된 신체와 마음의 혈행(血行)이 부드럽게 순환하며 ‘이제 좀 살 것만 같은’ 이완을 향유한다. 우리는 서로 풀등이 되어주어야 할 때가 있고, 이 시에서처럼 자신의 등을 기대고 휴식할 ‘구석과 벽’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 공간이 어찌 작으리. 감독의 연출과 배역의 연기에서 일탈하여 본래의 자기로 돌아갈 수 있는, 그저 존재로 존재하는 자유와 무위의 도량이 아닌가. 탈을 해제한 자, 그리하여 ‘볕을 기다리는 작은 꽃 한 송이 될 것만 같은’ 심정에 젖는다. 그러니까 수축한 작은 꽃이 이제 자신을 제대로 피우기 위해 햇빛을 바라며 그 도래의 희망에 안정된다. 이 어찌 우리에게 필요한, 스스로 격려하는 자봉(自奉)의 기대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다음 시를 읽으면, 역시 시장의 일상에서 일탈하여 저 지평을 헤아릴 수 없는 외계의 대자연을 바라보고 그 일부로, 운행의 질서를 공감하고 향유하라는 메시지를 만난다.      

     

     연초록 가로수 길이
     진초록 터널로 바뀌었네
     터널 속인데 웬 꽃이
     이렇게도 많이 피었을까
     장미 자목련 아카시아
     모란 작약 조팝 이팝
     층층나무꽃, 오동나무꽃
     터널 속인데 웬 새들이
     이리도 많을까 까치 비둘기
     참새 콩새 쑥새 슾새
     오목눈이 방울새   

               - 「산본, 오뉴월 가로수 길」/김동호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바뀌는 요즘 우리 주변의 변화를 스케치한 이 시. 짙어진 녹음과 새로 핀 꽃들, 그리고 여러 새들의 출현을 그저 보이는 대로 나열하고 있지만 독자들은 화자의 시선과 담담한 어조에 이끌려 어느덧 그 풍경에로의 몰입이 점층 촉진된다. ‘바뀌었네’, ‘피었을까’, ‘많을까’, 우리는 이 다소곳한 영탄 화법에 깃든 동심(童心)에 감응하며 이 스케치가 새삼스러우면서도 새삼스럽지 않게 되는 듯하다. 즉, 우리는 이 순진하기도 한 어조에서 오히려 성숙한 관조의 기운을 감수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터널’은 한정된 공간이 아니라 일상 생활의식과 도시의 인공시설에서 일단 격리된 세계, 즉 세속과 소통하면서도 경계가 가로 놓여 차원이 다른, 즉 ‘선경(仙境)’과 같은 시공이란 시사가 있다. 이 시는 신록의 세계로의 진입과 환희란 독자성 메시지가 있는데, 같은 시인의 시이며, 그 후속으로 보이는 「가장 큰 죄」와 상호보완의 관계가 있어 보여 우리가 연속 읽을 필요가 있다. 

     

     계절 바뀔 때마다
     내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한소리가 있다
     “어김없이
     또 보내 주시는
     이 새 아름다움,
     이것 모르는 죄보다
     큰 죄가 있을까” 

     

     ‘한소리’는 ‘잘못이나 실수를 꾸짖는 짧고 큰 외마디 소리’. 화자는 ‘계절 바뀔 때마다’ 자신의 거듭되는 그 각성을 짐짓 객화(客化)하며, 계절의 변화와 ‘새 아름다움’을 혹 간과한다면, 천하에 용납되기 어려운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우리는 이 선의의 과장에 승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심사를 그 무엇 때문에 차마 과장하지는 못 할 것이다.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젊은 후배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시를 소개하였더니 그는, 장년이나 노년은 물론, 공부와 일에 바쁜 젊은 세대가 오히려 읽어야 할 시들이라고 하였다. 

     앞 두 편 시와 더불어 이 시도 그러니까 독자들에게 저마다의 각도에서 넌지시 ‘카르페 디엠(carpe diem :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를 연상하게 하고 성찰하게 하기 때문인 것인가. 언제나, 누구나,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한다는 ‘한소리’를 자신으로부터 듣기 때문인 것인가.  

    출처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http://www.suwonilb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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