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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한국의 간화선이다 <4> 석전 선사의 선 사상철학/동양철학 2023. 3. 26. 19:04
문광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동국대 HK 연구교수 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스토리(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톡(으)로 기사보내기 네이버밴드(으)로 기사보내기바로가기 기사스크랩하기 다른 공유 찾기본문 글씨 줄이기가본문 글씨 키우기
“선(禪)에 대한 교리 바로잡은 선지식“
일제강점기 당시 조국을 되살릴 인재를 출·재가를 막론하고 두루 배출해내었던 진정한 스승이었던 석전스님의 가르침에는 선과 교가 일치한 겸학정신이 살아있다. 사진은 석전스님 진영.조선 제1의 강사이자 마지막 학승
석전 정호(石顚 鼎鎬, 1870~1948) 대종사는 법호는 영호(映湖)이며 특이하게도 속명인 박한영(朴漢永)이란 이름이 더 유명하다. ‘석전(石顚)’은 추사 김정희가 백파(白坡) 스님에게 훗날 법손 가운데 큰 도리를 깨쳐 나라의 기둥감이 될 재목이 나올 때 전하라고 했던 전설적인 아호다.
스님은 일제와 해방 직후 두 차례 조선불교교정(현 종정)을 역임한 당대 최고의 불교 지도자였다. 설파(雪坡)·백파(白坡)·설두(雪竇)·설유(雪乳)의 정통 강맥을 이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마지막 학승’이자 만암, 청담, 운허, 운기, 운성, 성우, 남곡 등의 법기(法器)를 길러낸 ‘조선 제1의 불학 강사’였다.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 전문학교 교장으로 근대 불교교육의 선구자이기도 했던 스님은 최남선, 조지훈, 정인보, 홍명희, 이광수, 신석정, 서정주, 이병기, 김동리, 김달진 등 당대 내로라하는 지성인들을 길러낸 국학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육당(六堂)은 “나는 누구에게도 물어볼 것이 없는데 석전 스님께는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고, 위당(爲堂)은 “한국 땅 어디에 가나 모르는 게 없고 무엇에 관한 문제를 꺼내든 화제가 고갈될 줄 모른다”라고 했다. 미당(未堂)은 “나의 뼈와 살을 데워준 스승”이라고 회고했다. 스님은 곧은 지조와 인격을 간직한 분으로 친일행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올곧은 선지식으로 20세기 불교와 국학이 만나는 정점에 서서 잃어버린 조국을 되살릴 인재를 출·재가를 막론하고 두루 배출해내었던 진정한 스승이었다.
매일 새벽 좌선을 했던 선승
우리는 석전스님을 대강백이라는 평가의 틀에 가둬두고 있다. 하지만 스님은 매일 새벽에 좌선을 했다고 한다. 그는 경전이나 문집을 한 번 보면 잊지 않았다는 ‘일람첩기(一覽輒記)’의 비상한 기억력과 타고난 총기의 소유자로 유명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운문종, 조동종, 벽안종을 잉태시켰던 희대의 선승인 석두(石頭, 700~790) 선사를 연상시키는 스님의 아호 ‘돌이마(石顚)’가 상징하듯이 그는 매일 새벽 생각이 끊어진 입선(入禪)의 세계에서 선교를 자재할 수 있는 근원적 힘을 얻었다고 봐야 한다.
고봉 원묘화상의 <선요(禪要)>에 등장하는 참선삼요(參禪三要)에 대해 스님은 새로운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대신근(大信根)은 마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대한 신념처럼 굳건해야 되고, 대분지(大憤志)는 부모를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에게 복수하려는 원한처럼 깊게 지녀야 하며, 대의정(大疑情)은 병에 걸린 자식을 염려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간절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님은 선학과 관련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그 오류들을 <영호대종사 어록>에서 낱낱이 지적해 놓았건만, 우리는 그 예리하고 날카로운 선사로서의 안목을 되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여래선과 조사선 바르게 알려주다
선학(禪學)에 대해 강의를 하다 보면 최근에도 듣는 질문이 있다. 여래선보다 왜 조사선이 높은 경지냐는 것이다. “부처님이 조사 스님들보다 못하다는 말이냐”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 원래 ‘여래선(如來禪)’이야말로 규봉 종밀스님이 선을 분류할 때 외도선, 범부선, 소승선, 대승선을 뛰어넘은 최상승선으로 칭해졌던 것이다. ‘조사선’이라는 말은 위산의 제자인 앙산스님이 사형인 향엄스님에게 “여래선은 알았지만, 조사선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고 했던 말에서 처음 유래했다.
이에 대해 석전스님은 분명하게 가닥을 쳐주고 있다. “여래선과 조사선이라는 말은 여래의 깨우친 바와 조사가 전수한 바와는 무관한 것이다. 봄 물과 가을 산이 제각기 안립(安立)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남에게 줄 수도 없고 남에게 말할 수도 없는 것을 굳이 이름 붙여서 ‘조사선’이라고 하였지만, 조사선을 향상일위(向上一位)에 별도로 올려놓고 여래의 진여법을 깎아내리려 하면 안 되니 여래와 조사의 위치를 뒤엉켜 이견을 내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석가 세존이 너무나 자상하게 언어와 문자로 진리를 다 설명해 둔 것을 문제 삼으며 조사 스님들의 대기대용(大機大用)을 강조한 것이 선불교 핵심이기 때문에 생겨난 분별일 따름이니 근본을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명철한 사람의 표월지(標月指)를 기다릴 뿐”이라는 말로 마감하고 있으니 스님의 해설은 지극히 명쾌하다.
개구(皆具)와 개증(皆證), 둘 다 가능하다
<원각경>에 보면 “일체중생(一切衆生), 개증원각(皆證圓覺)”이라는 구절이 있다. 일체중생이 모두 원각을 증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규봉종밀은 <원각경 소초>에서 “개증(皆證)”이라는 ‘증(證)’자를 ‘구(具)’자로 고치고서 말하기를 “이는 역자(譯者)가 잘못한 곳이다”라고 하였다. 훗날 늑담진정은 <개증론(皆證論)>을 지어 다시금 규봉스님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대목에 대해서 석전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화엄경> ‘여래출현품’에 보면 일체중생이 여래의 지혜공덕상을 본래 ‘갖추고’ 있으나 망상과 집착으로 능히 ‘증득하지 못한다’고 되어있다. 하지만 <열반경>에 보면 마음이 있는 이는 모두 보리를 ‘증득할 수 있다’고 했으니 ‘개구(皆具)’와 ‘개증(皆證)’은 모두 부처님께서 증거하신 말씀으로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르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고는 공평히 논해 본다면 ‘개증원각’이란 말이 나름의 이치가 있고 증거가 있는데 이미 <원각경>에 그렇게 된 구절을 하필 ‘개구’로 바꿀 필요가 있겠냐고 하면서 규봉스님의 잘못이 작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사이다 같은 스님의 판결이다. 여기에 필자가 <기신론>을 빗대어 다시 첨언해 보자면, ‘개구(皆具)’는 본각(本覺)의 측면이요 ‘개증(皆證)’은 시각(始覺)의 측면일 테지만 <원각경>에서는 ‘개증’이라 하여 본각을 더욱 드러내어 본래 갖추어진 불성을 굳게 믿으라는 강조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스님의 명료한 논리를 따르니 환해지는 것이다.
온몸이 그대로 시(詩)요 선(禪)인 삶
석전스님은 금강산 헐성루에서 다음과 같은 선시를 남기셨다. “신선도 부처도, 그렇다고 하늘도 아닌데/ 새하얀 바위산에 붉은 연기 감돈다/ 뉘라서 여기 올라 붓을 던졌다 하는가/ 온몸이 그대로 시(詩)요 선(禪)인 것을.” 스님의 가르침에는 선과 교가 일치한 겸학정신이 살아있고, 시와 선이 일여한 시선일규(詩禪一揆)의 운치가 남아있다. 내장사 백련암에서 “중도로 깨달음의 길에 들어가서 불국토를 이루라”는 유훈을 남기고 열반에 드셨다. 스님의 가르침에는 21세기의 선객(禪客)들이 다시 찾아내 공부해야 할 많은 부분들이 산적해 있다. 우리 서재에 좋은 참선교재를 버려두고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외국책만 찾고 헤매서는 안 되겠다.
문광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동국대 H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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