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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하축융봉 醉下祝融峰/朱熹 (1130 ~ 1200)
    당시 2022. 12. 28. 07:58

     

    취하축융봉醉下祝融峰

    남송南宋 주희朱熹 (1130 ~ 1200)

     

    ​사진: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융봉취하融峯醉下

    취하축융봉醉下祝融峰

    남송南宋 주희朱熹 (1130 ~ 1200)

     

    아래만리가장풍我來萬里駕長風하니

    절학층운허탕흉絶壑層雲許盪胸이라

    탁주삼배호기발濁酒三盃豪氣發하여

    낭음비하축융봉朗吟飛下祝融峰이라

     

    취하여 축융봉을 내려오며

     

    내가 만 리 길을 장풍타고 왔더니

    깊은 골짜기에 겹겹이 쌓인 구름이 가슴속 씻어주네.

    탁주 석 잔에 호기가 솟아올라

    소리 내어 한 수 읊으며 날듯이 축융봉을 내려온다네.

     

    주자학朱子學의 개조開祖로서 거경궁리居敬窮理(1)를 평생의 학곡學鵠(2)으로 삼은 주희朱熹에게 이런 술꾼다운 면모面貌가 있었나할 정도로 낭만적인 시이다. 사실 높고 험한 산을 오르면 누구나 가슴속이 씻은 듯 후련해지기 마련이다. 거기다 땀을 씻으며 탁주 몇 잔을 들이키면 호쾌한 기분에 호기가 발동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시인은 시 한 수 읊조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했으리라.

     

    <주1>주희朱熹/朱子의 격물치지론格物致知論은 거경궁리居敬窮理로 요약된다. 현실적 인간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이를 자신에게 보태야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를 탐구함에 앞서 경건함이 요청되어 여기에 거경居敬이 의미가 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그 목표로 하는 유학儒學에서는 객관적 사물의 이理를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는 상보적(相補的 관계에 있다. 거경은 내적 수양이고 궁리는 외적 탐구방법이다. 경은 정신을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물욕物慾이 정신을 착란치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연本然의 성性은 선善하지만 기질지성氣質之性은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기질지성氣質之性을 회복하여 본연지성本然之性과 일치시키는 방법으로 거경과 궁리를 말하는 것이다.

    <주2>학곡學鵠: ‘곡鵠’은 ‘고니 곡, 정곡 곡’자로 배움의 한 가운데, 배움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祝融峰: 축융祝融은 원래 불(火), 여름(夏), 남쪽 바다(南海)를 맡은 전설상의 신神으로 형산衡山 아래에 묻혔다하여 축융봉祝融峰이라 이름 하였다. 산山은 중국 오악五嶽 중 남악南嶽인 후난성湖南省 형산衡山 72봉峯의 최고봉이다.

    駕: ‘멍에 가’자로 ‘멍에, 탈것, 임금의 수레, 타다’ 등의 뜻이 있다. 여기서는 수레에 앉아 말을 몬다는 의미이다.

    長風: 원풍遠風과 비슷한 말로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을 뜻한다.

    絶壑: 깎아 세운 듯이 아스라한 골짜기를 가리킨다.

    層雲: 안개처럼 땅에 가까이 퍼져 떠있는 구름인 층구름을 뜻한다.

    許: 부사副詞로 쓰일 때에는 ‘~이렇다, ~저렇다’로 해석하면 무난하다.

    盪胸: ‘씻을 탕, 가슴 흉’자로 가슴을 깨끗이 씻어 준다는 뜻이다.

    豪氣: 활달하고 씩씩한 기상을 뜻한다.

    朗吟: ‘한시나 시조 따위에 음률을 넣어 읊조림’을 뜻한다.

    [출처] 주희朱熹의 취하축융봉醉下祝融峰 - 취하여 축융봉을 내려오며|작성자 향림

    壑 골 학, 盪 씻을 탕, 朗 밝을 낭, 融 화할 융, 화합하다

    ​*駕長風 '駕'는 마차나 가마에 타는 것. 몸이 바람에 실린 듯 떠 있는 기분. *絶壑 깎아지른 듯한 깊은 골짜기. 絶壁. *層雲 여러 겹 겹친 구름. *許盪胸 '許'는 정도가 높은 것. 이렇게도. '盪'은 감동으로 가슴이 설레는 것. *發 發生함.

    [해설] 제목은 '醉하여 祝融峯을 내려오(下)다'. '祝融峯'은 허난 省 衡山(형산)에 있는 일흔두 봉우리 중 최고봉. '祝融'은 중국 고대 신화, 전설에 등장하는 불의 神. 朱熹의 아버지 朱松은 시인이었고, 朱熹도 처음에 조정에 들어간 것은 시인의 자격으로서였다. (김희보)

    ※朱熹

    출생:1130. 10. 18, 중국 푸젠 성[福建省] 우계(尤溪)

    사망:1200. 4. 23,

    자는 원회(元晦)·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회옹(晦翁)·운곡노인(雲谷老人)·둔옹(遯翁). 존칭하여 주자(朱子)라고 한다.

    주자학을 집대성하여 중국 사상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주희는 〈논어〉와 〈맹자〉에 관한 집주(集注)를 저술하면서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나타냈는데, 중국·한국·일본 등의 지식인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주희는 역사에도 깊은 흥미를 보여 사마광의 역사서인 〈자치통감〉의 축약과 재편집을 지휘, 1172년 〈자치통감강목〉을 완성했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읽혔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최초로 간행된 중국역사서로서 무아리아크 드 마야가 쓴 〈중국통사〉의 토대가 되었다.

    주희는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18세 때 대과에 급제했는데, 당시 그 시험에 급제한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35세였다. 조정에 대한 주희의 정치적 비판과 이성적인 자세는 수용되지 않더라도 그의 철학체계 만큼은 유일한 관학으로 인정받았는데, 이같은 풍조는 19세기말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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