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洋學 第60輯(2015年 7月) 檀國大學校 東洋學硏究院
한시 대중화의 현황과 전망
41)박 동 욱*
❙국문초록❙
고전의 대중화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논자들이 언급한 바 있으나 한시의 대중화를 다룬 연구는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고전 전반의 대중화를 다룬 테두리 안에서 단편적으로 다루거나, 한시를 주로 다루었다 해도 번역의 문제에 치중했을 뿐이다. 여전히 한시는 여러 고전들 중에서 가장 대중화가 어려운 분야중 하나로 남아있다. 지금까지의 한시 대중화는 소수의 작가군이 주도해 왔고, 뒤따르는 연구자의 성과가 앞선성과를 뛰어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제는 그 작업을 이어 받아 선도해 나갈 젊은 피들이 필요하다. 기존의성과를 바탕으로 현대 독자들과 호흡하려는 의지와 실력이 요구된다.
작품 한 편을 놓고 평설을 다는 방식이 대부분인데, 개인에 따라 평설의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이제 평설도 인상 비평이나 작품의 동어 반복에서 벗어나 작가의 삶과 작품의 미감이 함께 드러날 수 있는 방향으로 진일보해야 한다. 또, 한 번 완역이 되고나면 그 후속 작업은 오히려 속도감을 잃는다. 완역은 훌륭한 원석이지만그것을 재가공한 결과물은 수공자의 실력에 따라 달라진다. 원석보다 화려하고 값지게 만들 수도 있고, 되레 그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리라이팅 작업이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미 출간된 한시 관련 서적들은 천편일률적으로 꽃, 계절, 명절, 지역 등을 다루고 있다. 이제는 이야기의
폭을 좀 더 넓혀 생태나 노년, 다양한 동식물, 장소 등에 새로운 온기와 호흡을 불어 넣을 때가 되었다. 지금이 시대는 학문적 자질과 대중적 역량을 함께 갖춘 연구자를 원하고 있다. 연구자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대중 저술에 대한 시도 또한 멈추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제어] 한시, 대중화, 인문학, 스토리텔링, 리라이팅(Rewriting)
❙목 차
Ⅰ. 서 론
Ⅱ. 대중성과 학문성
Ⅲ. 대중화의 어려움
Ⅳ. 대중화의 실제와 그 의미
Ⅴ. 결론(전망을 대신해서)
* 한양대학교 기초융합교육원 조교수 / sanwoon@hanmail.net
Ⅰ. 서 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자들에게 ‘대중’이란 수식어는 약간의 조소가 함의된 말이기도 했다. 실상 그 말의 기저에는 학술적인 연구를 등한시하거나 또는 학문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깔려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신진 학자들이 등장한 뒤부터 학문의 지형도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그들은 사상이나 관념, 민중, 민족 등 거대한 담론에서 벗어나 미시사, 생활사, 개인, 정서 등의 영역으로 연구를 선회했다. 여기에 대한 공과(功過)는 이 자리에서 논하지 않는다. 학계에 학문적 자질과 대중적 역량을 함께 갖춘 일군의 연구자들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탄탄한 학문적 바탕이 없는 대중화 작업이란 공허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반 대중의 구미를 쫓아 전문 저술 작업에만 치중한다면 학계에서 살아나기 힘들다.
고전의 대중화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논자들이 언급한 바 있으나 한시의 대중화를 다룬 연구는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고전 전반의 대중화를 다룬 테두리 안에서 단편적으로 다루거나, 한시를 주로다루었다 해도 번역의 문제에 치중했을 뿐이다.1) 여전히 한시는 여러 고전들 중에서 가장 대중화가 어려운분야 중 하나로 남아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의 세상이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는 데있다. 현대시조차 시의 난해함으로 인해 일부 시인과 평론가들의 전유물로 전락한 지 오래다. 현대시가 이러한 사정이니, 한시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본고에서는 우선 한시의 대중화를 가능케 하기 위해 넘어야 할 여러 난제들과, 대중화를 이룬 대표적 저작과 인물 등을 살펴보고, 한시 대중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모색하는 순서로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학계와 출판계, 학자와 독자 모두의 교집합을 찾는 하나의 시도가 되길 기대한다.
Ⅱ. 대중성과 학문성
전문화와 대중화는 양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대중화를 의식하지 않은 고고한 전문화는, 골방의 마스터베이션에 지나지 않는다.2) 강명관은 이 글에서 논문의 형식을 벗어나야 한다며, 루쉰의 잡문을 예로 들면서 또 다른 글쓰기의 가능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처럼 논문 글쓰기의 경직성을 비판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논문 쓰기가 가장 학문적으로 합당한 양식인가, 아니면 억압의 형태로 존재하는가 하는 조심스런 물음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물론 학문적인 기초가 서지 않은 채 형식의 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1) 이종묵, 「漢詩 硏究의 回顧와 展望」, 대동한문학 19, 대동한문학회, 2003; 강명관, 「한문고전의 활용: 대중화의 전제 조건:
떠나보내야 할 과거와 취해야 할 길」, 동양한문학연구 20, 동양한문학회, 2004; 김혈조, 「한문 고전의 대중화 방안 모색」,
대동한문학 31, 대동한문학회, 2009; 김풍기, 「고전의 번역과 대중화, 그 현실과 전망」, 우리말글 56, 우리말글학회,
2012; 정우봉, 「고전문학 연구의 소통과 대중화를 위한 방안 모색」, 국어국문학 165, 국어국문학회, 2013.
2) 강명관, 「한문고전의 활용: 대중화의 전제 조건: 떠나보내야 할 과거와 취해야 할 길」, 동양한문학연구 20, 2004. 13쪽.
이도 저도 아닌 글이 될 수 있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또, 논문에 담긴 내용들이 그저 학술 논문의 잣대에 충실할 뿐 기성품과 같다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형식이 변해야만 내용도 변할 수 있으니, 어느 하나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다. 논문의 폐쇄성으로 인해 제한된 전문가 집단의 소통 방식으로만 유효하고 심지어 해당 전문가조차 지극히 제한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면, 이제 그러한 형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한번쯤 해볼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대중적 저술을 집필할 수 있는 역량과 학술적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역량 중에 하나만 선택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두 가지 역량을 고르게 발전시켜 twoway로 가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두 가지를 절충하는 형식의 새로운 글쓰기도 평가되고 인정받아야 한다.
평가 방식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현 시스템에서 인정받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논문을 많이 쓰는 길 밖에 없다. 대중서나 역서는 아예 평가의 범주에도 들지 못하니 어려운 번역이나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은 기피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평가 시스템에서는 어찌 되었든 논문의 편수에 집착할 수밖에 없지만, 논문의 편수가 그 해당 연구자의 수준과 역량을 전반적으로 담보할 수는 없다. 논문 편수는 월등하나 자기 복제나 자기 표절의 혐의를 가질 수도 있고, 제한된 연구 범위를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논문 위주의 평가 시스템에서 주목할 만한 두 모임이 있는데, 바로 문헌과 해석 그리고 18세기 학회이다. 문헌과 해석은 1997년 서울대에서 <두시언해(杜詩諺解)>를 함께 공부하던 학자들이 의기투합하면서 시작됐다. 전공이나 나이, 학교를 따지지 않고 모여 학제 간의 교류도 촉발시켰고, 그때 모임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모두 학계 중진으로 성장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모여 발표를 하고 그 발표 원고를 모아 계간지문헌과 해석 을 펴내고 있다. 1997년 9월 30일 창간호를 선보인 이래 지금껏 꾸준히 출간하고 있지만, 논문에 버금가게 품이 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논문 평가 시스템에서는 평가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 모임의 구성원들이 주축이 되어 펴낸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태학사, 2011)는 주목을 요한다. 문학·역사·철학·미술·음악·연극·복식·군사 등 문(文)·사(史)·철(哲)·예(藝)를 아우르는 27명의 필진들이 ‘그림’이라는 흥미로운 제재를 통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한국’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종묵·안대회·정민·김문식 등의 중견학자를 비롯하여 김동준·고연희·윤진영·사진실 등의 소장학자, 함영대·이경화·유재빈·이경미 등의 신진학자들이 참여했다. 후속 작업인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태학사, 2013)는 32명의 필진들이 먼저 네이버 캐스트 원고를 게시하고 그 원고를 모아 출판했다.
18세기 학회의 행보도 흥미롭다. 신생 학회가 학회지를 꾸려 나가 등재 후보지나 등재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쏟는 집행부의 노력은 눈물겹다. 원고를 요구하는 측이나 요구받는 측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18세기 학회는 원래 학술지가 있었으나 과감하게 접은 뒤 ‘혀끝의 인문학’이란 제목으로 학술 발표회를 열고, 발표된 원고를 2012년 9월부터 2013년 7월까지 거의 1년 동안 네이버 캐스트에 연재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시도는 매우 참신하고 이례적인 일로 평가할 수 있다. 그 결과물로 18세기의 맛: 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 (문학동네, 2014)이 출간되었다. 안대회, 이용철, 정병설, 정민, 주경철, 주영하, 소래섭 등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스물세 명이 쓴 글을 엮어 만든 책이다. 현재는 18세기 장인과 명품이란 주제로 학술 발표회를 진행 중에 있다.
문헌과 해석, 18세기 학회는 꾸준히 대중화 작업의 성과를 내고 있다. 대중화를 선도했던 그 당시 신진 학자들이 문헌과 해석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그 주축 멤버들이 18세기 학회의 회장단으로 활동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Ⅲ. 대중화의 어려움
시는 오독(誤讀)의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한시는 오독(誤讀)뿐만 아니라 오역(誤譯)의 가능성까지 동시에 가진다. 오역이 있다면 오독은 피할 수 없으니 한시의 번역은 오역과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번역 자체에 시간과 정성이 워낙 많이 들어가는 탓에 번역 이후의 후속 작업은 오히려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도 준다. 한시를 대략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한학 수련이 필요하니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현재 고전 번역원을 중심으로 여러 기관에서 국책 사업으로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최초 완역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데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예전에는 통상 여러 사람이 집체적으로 번역을 수행했기 때문에 번역자마다 편차도 있고 통일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었다. 현재는 한 명의 작업을 여러 경로를통해 상호 교체 검토를 수행하는 방법으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러한 기관에서 수행한 작업은 원석에 해당한다. 그래서 꽤나 묵직하고 어렵다. 연구자들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라 일반 대중 독자들이 다가서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원석이 한 번 나오면 그것을 재가공하는 여러 방식의 작업들이병행되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앞으로는 다양한 리라이팅(Rewriting)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후속 작업자들은 선행 작업자들의 오역과 미진함을 연이어 수정하고 보완할 책무가 있다.
한시의 대중화 작업에는 적어도 네 가지 능력이 필수적이다. 첫째는 뛰어난 한문 실력이다. 아무리 유려하게 번역을 하고 멋지게 평설을 붙인다 하더라도 오역(誤譯)이 있다면 그것은 헛일에 불과한 셈이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지만 오역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는 유려한 한글 감각이다. 축자적(逐字的)으로 번역을 할 경우에 원 시인의 의도에 가장 근사(近似)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의(大義)는 맞지만 비시(非詩)적인 번역도 적지 않다. 자칫 번역에 너무 멋을 들이면 어떤 작가든 번역자 한사람의 스타일과 유사해지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문제는 축자적 번역 자체가 아니라, 글의 대의를 거스르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어떤 감응도 줄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리듬과 운율을 살려 번역해야만 시맛이 산다. 그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시가 아니다. 앞서 축자적 번역에 매몰될 때의 문제점처럼 리듬과 운율에 지나치게 경도될 경우 겉으로는 멋지지만 글자 수만 맞추어 번역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없다. 여기에서 주석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주석이 빼곡한 학술 번역은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지기마련이다. 고전 담당 편집자들은 한시가 대중화되기 어려운 이유로 한결같이 주석을 꼽는다. 대중 번역서에는 작품의 이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주석을 최대한 배제하여 가독성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번역도 다 같은 번역이 아니다. 일반 대중이 읽기 편하게 만들려면 최초 번역한 공만큼이나 많은 시간이 할애되어야 한다. 의역과 직역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직역을 위주로 하되 의역을 선택적으로 고려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본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의역은 개악(改惡)이 될 수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능력은 학술 번역이든 대중 번역이든 번역자가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이다. 이두 가지를 그런대로 만족시키는 번역자들은 적지 않다. 하지만 한시 대중화 작업에는 몇 가지 더 특별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
셋째는 한시에 대해서 감각적인 평설을 달 수 있어야 한다. 일부 고급 독자들을 제외한 일반 독자들이 한시 번역만을 보고서 감동이나 감흥을 일으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한시 번역에 덧붙여 쉽고 감각적인 평설을 달 수 있어야 함은 필수적 능력이라 할 수 있다. 평설은 개인적인 역량이나 문학적 감수성과 결부된 것이라 그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해당 한시에 대한 동어반복적인 인상 비평에 머무는 것도 지양되어야 한다. 작가의 삶, 시대, 해당 시에 대한 장악력, 현대적 주제와의 자연스런 연계가 필요해 보인다. 작품 하나를 놓고 아래에 평설을 다는 방식은 한 작가 또는 같은 주제의 작품들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지금까지는 계절, 날씨, 꽃 등 특정 주제로 묶어 작품을 모은 평설집이출간되어 왔지만, 앞으로 다양한 형태와 주제로 엮은 한시 평설집이 많이 나온다면 인접 분야 연구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넷째는 여러 한시들을 모아서 교직(交織)하여 하나의 테마로 만들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한다. 이 작업은 한시뿐만이 아니라 편지, 산문 등과 함께 엮은 경우가 많다. 그래도 빈도 면에서는 여전히 한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문집 전체를 모두 해체해서 완전히 장악한 뒤에 자신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인물들과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몇몇 연구자들이 이러한 작업들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것은 웬만한 공력으로 쉽게 시도하기 힘들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가능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중화 작업이 가능해진다.
이 중 두 개 정도의 능력만 갖추어도 일반 연구자로서 충분히 활동할 수는 있지만, 이 네 가지 능력을 고루 갖추지 않고서 한시 대중서를 쓴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그러나 이 조건들을 모두 갖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그만큼 조건이 충족되는 연구자 또한 생각보다 많지 않은 형편이다.
Ⅳ. 대중화의 실제와 그 의미
1. 한시 관련 서적의 실례
지금까지의 작업은 한시선이 우세했다.3) 선자(選者)의 감식안에 따라 시들을 선택해서 번역했다는 점은 높이 쳐줄 만하다.
3) 이규용 저, 조두현 역, 한국한시선 , 한국자유교육협회, 1973; 조두현 역, 한국한시선: 해동시선 , 큰손, 1982; 김달진, 한국한시 01~03, 민음사, 1989; 이병주, 한국한시선 , 探求堂, 1992; 이종찬, 한국한시대관 , 以會文化社, 1998; 송준호,한국명가한시선 , 태학사, 1999.
그러나 단순 번역에 그친 경우가 많아서 일반 독자들의 깊이 있는 감상을 돕는 데에는 한
계가 있었다. 이제는 늘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시들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한시선이 등장할 필요가 있다.
해당 지역과 관련된 한시 모음이 많은 종류를 차지한다. 금강산,4) 지리산,5) 부석사,6) 강화,7) 부여,8) 삼척,9) 순천,10) 울산,11) 제주,12) 화순13) 등이 다루어졌고, 대부분 지역 문화원을 중심으로 작업이 이루어졌기때문에 해당 지역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는데 의의를 둘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좀 더 깊이 있는 논의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 작업할 수 있는 지역들이 아직도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작업이 지역의 홍보 또는 관광에도 큰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 콘텐츠 개발에 훌륭한 원천 자료가 될 것을기대한다.
여성 한시에 대한 관심은 1980년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 1990년대 이후로는 새로운 여성 작가가 발굴되고, 여성 정감을 다룬 작품에 대한 페미니즘적 시각의 논문들이 왕성하게 발표되고 있다. 이혜순 등 이화여대 연구자들이 집필한 한국고전여성작가 연구 (태학사, 1998)도 여성 작가를 총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분야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2000년 여성 고전문학회가 창립되고 여성고전문학 이 창간된 후 페미니즘이라는 이론의 틀 안에서 한시 속 ‘여성’을 찾고자 한 시도는 앞으로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부 연구에서 의욕만큼 시에 대한 ‘감식안’이 담보되지 못한 한계가 발견되거나, 전통 시대 ‘여성’에 대한 실증적 연구의 뒷받침이 충분하지 못한 탓에 과거의 시를 통해 ‘현재성’을 찾아내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14) 여성 한시는 대부분 기녀를 중심으로 작품을 모아 평설을 붙인 형태가 일반적이다. 현재로서는 미발굴 작가가 등장하지 않는 한, 차별성을 가진 작업을 하기에는 아직 힘들 것 같다.15)
계절을 다룬 것들도 눈에 띈다.16) 계절별이나 월(月)별, 또는 명절이나 절기로 해당 한시를 배치한 것이 대부분이다. 세시기(歲時記) 등과 연동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단오, 유두, 칠석, 추석, 중양절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배치하여 자료집의 형식을 띤 것도 있다.17) 이런 방식을 통해 다양한 주제의 자료들이 축적된다면 훌륭한 원석(原石)의 기능을 할 수 있으므로 무의미한 작업은 아닐 것이다.
4) 이경수·강혜선·김남기 역, 진경시로 노래하는 금강산 , 강원대학교출판부, 2000; 최강현, 금강산 한시 선집 , 신성출판
사, 2002.
5) 강정화·구경아, 지리산 한시 선집 (청학동 지리산권문화연구단 자료총서 13), 이회문화사, 2009; 강정화·구경아, 지리
산 한시 선집 (천왕봉, 지리산권문화연구단 자료총서 14), 이회문화사, 2009; 강정화, 지리산 한시 선집 , 이회, 2010.
6) 영주문화유산보존회 저, 산승은 동녘바람 등지고 낙화를 쓰네: 부석사 한시 , 2011.
7) 박헌용, 역주 강도고금시선(전집) ,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2010.
8) 진경환 역, 백마강, 한시로 읊다: 扶餘懷古漢詩選 , 민속원, 2011.
9) 전학수 역, 국역 척주한시집(상, 하) , 三陟文化院, 1997.
10) 허근·진인호 역, 순천옛시(고려말~조선말) , 순천문화원, 2004.
11) 성범중, 한시 속의 울산 산책– 울산의 경승과 사람살이– , 울산대출판부, 2010; 송수환, 태화강에 배 띄우고– 울산경승
한시선집 1 – , 작가시대, 2012.
12) 제주문화원, (譯註)濟州 古記文集 , 제주문화원, 2007; 박충원,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 16세기 제주와 영월에서 시(詩)
로 나눈 우정, 조사수 , 제주시문화유적지관리사무소, 2011.
13) 강동원 역, 화순의 옛 시 , 藝苑, 1991.
14) 이종묵, 「漢詩 硏究의 回顧와 展望」, 대동한문학 19, 대동한문학회, 2003, 31쪽 참고.
15) 조두현, 한국 여류 한시선 , 태학당, 1994; 김지용·김미란 저, 한국 여류한시의 세계 , 여강출판사, 2002; 이원걸, 안
동여류한시(정부인 안동 장씨·광산 김씨·호연당 김씨·설죽) , 이회문화사, 2002; 김지용, 한국역대여류한시문선 , 明
文堂, 2005; 강혜선, 여성 한시 선집, 문학동네, 2012.
16) 김종서, 봄 여름 가을 겨울 , 김영사, 2012; 한시로 여는 아침 , 성범중, 태학사, 2014.
그러나 단순히 이런 작업을 대중화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밖에도 다양한 제재를 다룬 한시 책이 꽤 된다. 유년기 아이들의 한시인 동몽시를 다룬 허경진의 한시 이야기– 옛 선비들이 어릴 적 지은 (알마, 2014)는 시화나 문집에 실려 있는 한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들을 소개했다. 천진한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작품이라 현대 동시(童詩)를 읽는 것처럼 쉽게 읽힌다. 바둑과 같이 독특한 제재와 관련된 한시를 묶어 펴낸, 곽정의 풍류 바둑시: 바둑 한시 그리고 풍류 (풍류각, 2012)는 전문 연구자는 아니지만 자신의 독특한 관심사와 관련된 작업으로 눈길을 끌었다. 또, 꽃을 읊은 한시를 다룬 책들18)도 제법 있는데, 많은 동식물 중 주로 꽃에 집중된 점은 의외다. 이밖에 불교를 제재로 승려의 시나 사찰을 다룬 작품으로 구성한 책들도 눈에 띈다.19)
죽음이란 커다란 주제를 축으로 한 선집 등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도망시(悼亡詩), 도붕시(悼朋詩), 곡자시(哭子詩) 등 만시(輓詩) 전반을 고루 소개한 전송열의 옛사람들의 눈물– 조선의 만시 이야기 (글항아리, 2008), 저자 정선용이 직접 상처(喪妻)한 아픔 속에서 도망시 위주로 여인의 마음을 다룬 시들을 모아 엮은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그리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일빛, 2011), 조선시대 문인들이 남긴 자만시(自挽詩)를 모아 우리말로 옮기고 번역한 임준철의 내 무덤으로 가는 이 길– 조선시대 자만시 역주 평설–
(문학동네, 2014) 등이 있다. 죽음이란 인간에게 영원히 유효할 수밖에 없는 테마다. 따라서 이러한 작업들은 학술성과 대중성을 고루 확보한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고구려20)와 고려,21) 조선,22) 식민지23) 등 시기별로 선집한 것도 있다. 이 중 임형택의 이조시대 서사시 (상, 하)(창작과 비평사, 1992)는 최근 재출간되었는데, 조선시대 작품 중 절창(絶唱)으로 꼽히는 122편을 가려 뽑고, 각 편마다 작자 소개와 작품 해설을 수록했다. 뛰어난 학술서인 동시에 대중들이 읽기에도 별반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여기에는 본인의 탁월한 학문적 역량이 집대성되어 있다. 기왕에 익히 알려진 것은 물론 그렇지 않은 작품까지 본인의 안목으로 뽑아 유려한 한글로 번역하고 깊이 있는 해설을 덧붙였다.
유배는 조선시대 지식인이라면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라 남아 있는 자료도 매우 풍부한 편이다. 박혜숙의 부령을 그리며 (돌베개, 1998)는 김려가 유배지에서의 추억을 290수의 연작시로 창작한 ‘사유악부’를 번역한 것이다. 실시학사의 유배지에서 역사를 노래하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1)는 이학규의 많은 저작 중 경상도 김해 지방에서 24년간 유배하면서 그 지역의 역사적 인물과 유적들을 악부체로 그린 ‘영남악부(嶺南樂府)’를 번역한 글이다. 안대회와 이종묵의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는 14개의 유배와 관련된 섬(위도,거제도, 교동도, 대마도, 진도, 백령도, 제주도, 흑산도, 녹도, 남해도, 신지도, 임자도, 추자도)을 찾아, 유배객들의 삶의 궤적을 좇았다. 시만으로 구성한 것은 아니지만 주로 관련된 시들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17) 윤호진, 천중절에 부르는 노래– 단오– , 민속원, 2003; 동류수에 머리감고– 유두– (한시로 읽는 세시풍속 2), 민속원,
2004; 은하수에 막힌 사랑– 칠석– (한시로 읽는 세시풍속 3), 민속원, 2004;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추석– (한시로 읽는
세시풍속 4), 민속원, 2005; 잃어버린 가을명절– 중양– (한시로 읽는 세시풍속 5), 민속원, 2006.
18) 손종섭 역, 내 가슴에 매화 한 그루 심어놓고–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매화 동산– , 학고재, 2001; 정민, 꽃들의 웃음판–
한시로 읽는 사계절의 시정– , 사계절, 2005.
19) 김상일 역, 한국불가한시선(대동시선·총림) , 보고사, 2001; 임종욱, 산사에 가면 시가 보이네: 옛 선비들의 사찰 기행시 ,
이회문화사, 2001; 이승수, 산사에도 그리움이 있었네 , 다할미디어, 2002.
20) 이혜순, 남은경, 천손은 어느 곳에서 노닐고 계시는고– 한시 속의 고구려– , 소명출판, 2009.
21) 허경진, 고려시대 승려 한시선 , 평민사, 1997;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읽기 , 이담북스, 2009; 이성호, 고려 한시 선집 ,
문학동네, 2013.
22)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상하 2권), 이담북스, 2010.
23) 한영규·이희목·김찬기·김유경·김진균, 식민지시기 한시자료집 , 성균관대학교대동문화연구원, 2009.
정민의 한밤중에 잠깨어 (문학동네, 2012)는 다산의 장기와 강진 유배 시절의 시들을 모아 유려한 번역과 평설을 붙인 책이다. 다산의 삶은 유배의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의 작업으로 전집을 완역 출간하기 힘든 현실에서 한 개인의 특정 시기 작품만을 모아 단행본으로 구성한 점은 합리적인 선례를 보여준 셈이다.
2. 대표적인 저술가와 그 저작들
한시 대중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90년 초에 출간된 손종섭의 옛 시정을 더듬어 (정신세계사, 1992)24)와 김도련, 정민의 꽃 피자 어데선가 바람 불어와 (교학사, 1993)의 등장으로 한시 대중화의 문제가 환기되었다. 이러한 작업의 선두 주자는 강명관, 정민, 안대회, 이종묵 교수 등이 꼽힌다. 그중 정민 교수는 대중화 작업에 가장 적합한 사례로 들 수 있다.
[1] (한국의 애정 한시) 꽃피자 어데선가 바람불어와, 김도련 공저, 교학사, 1993.
[2] 한시 미학 산책, 솔, 1996.
[3]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보림, 2003.
[4]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1, 2, 효형출판, 2003.(*재출간: 새 문화사전, 글항아리, 2014)
[5] 꽃들의 웃음판– 한시로 읽는 사계절의 시정, 김점선 (그림), 사계절출판사, 2005.
[6] 한밤중에 잠 깨어– 한시로 읽는 다산의 유배 일기, 정약용, 문학동네, 2012.
[7] 우리 한시 삼백수:7언절구 편, 김영사, 2013.
[8] 우리 한시 삼백수:5언절구 편, 김영사, 2014.
[1]은 시 앤솔로지 [Anthology]의 전범을 보여주며 모두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춘 남녀의 설렘과그리움의 연정에서 신혼의 사랑싸움과 시집살이의 어려움, 이별과 기다림, 여성의 원망과 남성의 아내 생각,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한 남편, 남편과 사별한 아내의 사모곡을 각각 나누어 묶었다. 각 장의 한시들은 일반 독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한시 연구자에게도 주의를 환기시켰다. 한시의 다양한 미감(美感)을 소개하여 각 장이 모두 연구 테마로 손색이 없다. [2]는 시 전문지 현대시학 에 94년 2월부터 96년 5월에 걸쳐 연재한 글을 보태어 손질하고, 차례를 가다듬어 정리한 것이다. 2010년 전면 개정되어 휴머니스트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현대 시인들로부터 많은 편지와 격려를 받았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모두 18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24) 옛 시정을 더듬어 , 정신세계사, 1992년(김영사, 2011년 재출간); 내 가슴에 매화 한 그루 심어 놓고 , 학고재, 2001; 다
시 옛 시정을 더듬어 , 태학사, 2003; 손끝에 남은 향기 , 마음산책, 2007.
25) 한시의 세계를 풍성한 예화로 정겹고 운치 있게 말해주는 한시 입문서, 한시의 다양한 형태미와 내용분석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고급 교양서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3]은 저자의 인지도를 높여준 책이다. MBC 느낌표 선정 도서로 41만부가 팔려 나갔다. 어린이를 위한 한시 입문서로 19가지의 이야기와 44편의 한시가 소개되어 있다. 어려운 한시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충분히 읽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4]는 새와 관련된 그림 및 사진 210여 컷과 170여 수의 한시를 수록하고 그로부터 36종의 새 이야기를
전해준다. 새와 관련된 한시를 단순히 모으는데 그치지 않고, 해당 새에 대한 문학, 회화, 조류학까지 수용하여 다채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의 다양한 학문적 호기심은 다양한 분야로 외연을 확장하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색했다.
[5]는 봄 꽃, 여름 숲, 가을 잎, 겨울 산의 사계절로 나누어 선조들의 명시 120편을 묶어
냈다.
[6]은 다산이 유배지에서 지은 한시 중 자기 독백에 가까운 것들만 모아 다산의 시점에서 일기 쓰듯
정리한 것이다. [7][8] 삼국부터 근대까지 우리 5언절구와 7언절구 3백수를 가려 뽑고 풀이했다. 특히 5언절구를 우리말로 옮길 때는 보통 7.5조의 3음보 가락으로 옮겨 읽지만 이 책에서는 4.4나 5.5 또는 3.3.3의 실험적 번역을 다양하게 시도했으며 특별히 4.4의 가락에 천착했다. 한시 번역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한시의 평설은 인상비평에 국한되어 있지만 가볍지 않다.
정민은 대중화 작업을 다양하게 시도해서 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었다. 그의 특장은 탄탄한 원문해석 능력, 유려한 번역, 감각적인 해석, 다양한 관심 분야 등을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유려한 번역 솜씨는 독자들을 강력하게 견인하는 힘을 가진다. 그는 일반 독자와 전문 연구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중견 연구자이다. 그의 작업은 아동물, 한시 입문서, 한시 선집, 특정 주제로 묶는 작업, 한시 평설까지
편폭이 매우 다양하다. 최근 출간된 삶을 바꾼 만남–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2011)과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하버드 옌칭 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 (문학동네, 2014)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약용과 황상의 이야기를 여러 문헌과 자료를 통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 구조로 만들고 있다. 두 사람의 문집을 꼼꼼히 분석해서 그들의 만남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또 하버드 대학교 옌칭도서관에서 발굴한 일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의 컬렉션을 바탕으로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화 학술 교류사를 복원해 냈다.
[1] 추재기이, 한겨레출판, 2010
[2] 궁극의 시학– 스물네 개의 시적 풍경, 문학동네, 2013.
[3] 새벽 한시– 빛과 어둠을 만나는 시–, 태학사, 2014.
25) 허공 속으로 난 길 ― 한시의 언어 미학, 그림과 시 ― 사의전신론(寫意傳神論), 언어의 감옥 ― 입상진의론(立象盡意論),보여주는 시, 말하는 시 ― 당시와 송시, 버들을 꺾는 뜻은 ― 한시의 정운미(情韻味), 즐거운 오독 ― 모호성에 대하여, 사물과 자아의 접속 ― 정경론(情景論), 일자사(一字師) 이야기 ― 시안론(詩眼論), 작시, 즐거운 괴로움 ― 고음론(苦吟論),미워할 수 없는 손님 ― 시마론(詩魔論),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론(詩窮而後工論), 시는 그 사람이다 ― 기상론(氣象論), 씨가 되는 말 ― 시참론(詩讖論), 놀이하는 인간 ― 잡체시의 세계 1, 실험정신과 퍼즐 풀기 ― 잡체시의 세계 2, 말장난의 행간 ― 한시의 쌍관의(雙關義), 해체의 시학 ― 파격시의 세계, 바라봄의 시학 ― 관물론(觀物論).
[1] 추재기이는 이미 허경진에 의해 번역된 바 있다. 안대회는 기존 번역서의 오류를 수정하고 평설을 달았다. 그는 지속적으로 마이너리티에 대한 관심을 보여 왔으며, 여러 권의 저작으로 출간했다. 이러한 그의 관심 속에서 추재기이 에 보이는 다양한 인물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을 붙였다. 도둑, 강도, 조방꾼, 거지, 부랑아, 방랑 시인, 차력사, 골동품 수집가, 술장수, 임노동자, 떡장수, 비구니 등 71인의 하층 인물들을 생생히 보여준다. 일반 독자들이 조선시대 다양한 인물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이는 읽기에 쉽지 않은 책이지만, 인물마다 풍부한 해설을 첨부함으로써 단순 번역이 지닐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2] 시품은 스물네 개의 풍격(風格)을 일종의 시로 표현해 ‘시로 시를 말한’ 시학 텍스트다. 저자는 당나라 말엽의 시인 사공도(司空圖, 837~908)로 알려져 있었으나, 분명치 않다. 저자는 이처럼 다양한 시품의 미학을, 매 장마다 중국과 한국의 시와 산문을 들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한중 양국의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기존 시학서(詩學書)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완전히 재해석해서 각 풍격(風格)에 적합한 작품들과 사례들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3]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 문인들의 한시 100수를 번역하고 평설을 단 책이다. 안대회의 특장 중 하나인 유려한 한글 번역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늘 인용되는 시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 책에 실린 시의 4분의 3은 학계에도, 일반 독자에게도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로 구성했다. 명작으로 알려진 작품이나 시선(詩選)에 실린 작품은 배제하고, 자신의 감식안으로 작품을 선정했다는 데 의의를 가진다.
안대회는 소품문(小品文)을 중심으로 학계에 새로운 관심을 촉발시켰다. 폭넓은 자료 섭렵은 남들이 쉽게따를 수 없는 부분이다. 관심 밖에 있었던 여러 작가들을 발굴하여 문학사에 복원시켰으며, 간결한 번역과 다양한 문제의식 또한 그의 특장으로 들 수 있다.
[1] 조선의 문화공간 1~4, 휴머니스트, 2006.
[2] 우리 한시를 읽다, 돌베개, 2009.
[3] 부부, 문학동네, 2011.
[4] 한시 마중– 생활의 시학, 계절의 미학, 태학사, 2012.
[1] 조선시대 문인들의 삶과 조선의 옛 땅을 추적한 80여 편의 글을 묶은 책이다. 수백 종에 달하는 문집을 섭렵하면서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의 역사를 되짚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옛 사람들의 집터와 관련 이야기들을 복원해냈다.
[2] 신라시대 고운(孤雲) 최치원의 ‘가을 밤 비 내리는데’(秋夜雨中)부터 구한말 매천 황현의 ‘목숨을 끊으면서’(絶命詩)에 이르기까지는 한시사 전반에 걸친 명편들을 주로 다루었다. 중국의 한시와 다른 우리 한시의 특징을 찾고자 노력했다.
[3] 부부는 예전부터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부부의 문제는 절실하고도 어렵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녀가 겪는 문제는 보편타당하다. 부부의 만남에서 죽음으로 인한 헤어짐까지 부부가 겪는 이야기들을 한시로 풀어냈다. 이렇듯 특정 주제를 설정해서 일련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매우 유효해 보인다. 문제는 얼마나 현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만들었나에 있다. 자칫 잘못하면 주제에 따라 단순히 시들을 늘어놓은 것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절기에 따른 시들을 모아 번역한 책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각 절기에 어울리는 한시와 옛사람들의생활상을 엮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거기에 해당 절기에 따른 음식과 문화, 풍습도 함께 실었다.
이종묵은 한시만을 꾸준히 탐색하는 연구자이다. 누구보다 한시에 대한 식견과 이해가 넓으며, 정확한 번역을 통해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는 특장을 지니고 있다.
이 밖에도 고연희, 김풍기, 박동욱, 심경호 등을 꼽을 수 있다. 고연희는 한시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림과 연관된 한시들을 엮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는 남다른 특장을 가진다. 김풍기는 일관되게 한시 대중화와 관련된 작업을 지속해 왔다. 가장 최근 저서인 한시의 풍격 에서는 사대부의 시뿐 아니라 승려의 시, 중인의 시들까지 폭넓게 살폈다.26) 박동욱은 조선시대 다양한 가족 형태에 주목하여 세상에 다시없는 내 편– 가족– (태학사, 2014)을 펴냈다. 지금은 조선시대 아버지 20명의 이야기를 엮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심경호는 왕성한 연구 활동으로 폭넓은 연구 업적을이루었다는 점에서는 누구도 이의가 없겠지만, 대중화 문제에서 거론하기엔 조금 주저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런 점이 그가 보여준 깊고 넓은 학문적 성과에 누가 되지는 않는다. 다종다기한 관심 분야에 원석과 같은 자료를 집대성한 여러 건의 작업이 있다.27) 이밖에도 고전 대중화와 관련된 연구자들이 많이 있지만, 한시만으로 대상을 좁혔기에 부득이하게 빠진 분들도 있음을 밝혀 둔다.
Ⅴ. 결론(전망을 대신해서)
공부를 한 연차나 깊이로 볼 때 훌륭한 선후배들의 작업을 논할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한시 전공자 중한 사람으로서 한번쯤 이 문제에 대해서 정리할 필요성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한시와 관련해 수많은 논문과 저서가 출간되었고, 한시 관련 대중 서적의 출간도 매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본고에서는 그동안의 출간 상황과 현황, 그리고 앞으로의 출간 방향에 대해서 거칠게나마 살펴보고자 했다.
지금까지의 한시 대중화는 소수의 작가군이 주도해 왔고, 뒤따르는 연구자의 성과가 앞선 성과를 뛰어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제는 그 작업을 이어 받아 선도해 나갈 젊은 피들이 필요하다. 기존의 성과를 바탕으로 현대 독자들과 호흡하려는 의지와 실력이 요구된다. 이론적으로는 탄탄한 한문 실력과 현대적인 감각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지만, 실제 이런 능력을 다 갖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26) 시마– 저주받은 시인들의 벗 , 아침이슬, 2002; 옛 시 읽기의 즐거움 , 아침이슬, 2002; 옛시와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
해토, 2004; 삼라만상을 열치다– 한시에 담은 24절기의 마음 , 푸르메, 2006; 옛시에 매혹되다– 한시에 담긴 옛 지식인
들의 사유와 풍류 , 푸르메, 2011; 한시의 품격– 조선 지식인 문화의 정수, 한시 이야기 , 창비, 2014.
27) 김시습 평전 , 돌베개, 2003; 한시기행 , 이가서, 2005; 한시의 세계 , 문학동네, 2006; 한시의 서정과 시인의 마음 ,
서정시학, 2011; 참요, 시대의 징후를 노래하다 , 한얼미디어, 2012.
너무 도식적인 형식 또한 문제다. 작품 한 편을 놓고 평설을 다는 방식이 대부분인데, 개인에 따라 평설의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이제 평설도 인상 비평이나 작품의 동어 반복에서 벗어나 작가의 삶과 작품의 미감이 함께 드러날 수 있는 방향으로 진일보해야 한다. 주제별로 해당 한시를 묶어 스토리텔링을 구사할 수 있는 훌륭한 스토리텔러로서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이야기를 꾸려 나가는 필력(筆力)에 따라 수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흩어진 시들을 어떠한 계기나 맥락 속에 설득력 있게 배치한 후 작가의 삶을 훌륭하게 복원하거나, 특정 소재나 주제에 대해서 완결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한 번 완역이 되고나면 그 후속 작업은 오히려 속도감을 잃는다. 완역은 훌륭한 원석이지만 그것을 재가공한 결과물은 수공자의 실력에 따라 달라진다. 원석보다 화려하고 값지게 만들 수도 있고, 되레 그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리라이팅 작업이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시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돌베개의 우리고전 100선과 같은 선집류의 출간은 좋은 선례로 볼 수 있다(1차분은 유금, 김시습, 이규보,홍대용, 장유, 신흠, 최치원, 이황, 이덕무, 정약용 등 당대를 대표했던 문인들의 시가와 산문을 수록했다).
문학동네의 한국고전문학전집(총18권), 태학사의 산문선(총27권), 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선집(총4권) 등도 이런 기획의 결과물이다. 아동물 시장에 고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신화나 소설에 국한되어 있는 실정이다. 아동, 청소년물을 기획하여 어릴 때부터 한시에 익숙해지고 한시의 미감을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인문학 열풍이 점차 거세지면서 다양한 인문학 강좌가 기획·활성화되었지만, 한시 강좌는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한시 강연의 기획도 한시의 저변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출간된 한시 관련 서적들은 천편일률적으로 꽃, 계절, 명절, 지역 등을 다루고 있다. 이제는 이야기의 폭을 좀 더 넓혀 생태나 노년, 다양한 동식물, 장소 등에 새로운 온기와 호흡을 불어 넣을 때가 되었다. 이러한 작업이 가능케 된 데에는 고전번역원을 위시로 한 공공 기간의 웹서비스가 한 몫을 했다.28) 앞으로는 한시 선집이나 시화(詩話)류의 db화도 함께 추진해 한시의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금 이 시대는 학문적 자질과 대중적 역량을 함께 갖춘 연구자를 원하고 있다. 대중과 대척적 위치에 서서 전문화만 고집한다면 그 연구 성과 또한 틀 안에 갇힌 공허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연구자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대중 저술에 대한 시도 또한 멈추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28)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원장 송성각)은 국내 역사·문화·민속·고전 등 국내 인문 자산 관련 7개 기관(한국콘텐츠진흥원·국립문화재연구소·국립민속박물관·동북아역사재단·한국고전번역원·한국문화정보원·한국저작권위원회)들이 개별적으로 제공해 오던 자료를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로 모아 통합 제공하는 ‘컬처링(Culturing)’ 사이트(www.culturing.kr)
를 오픈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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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현 역, 한국한시선: 해동시선 , 큰손, 1982.
* 이 논문은 2015년 5월 29일에 투고되어,
2015년 6월 9일까지 편집위원회에서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2015년 6월 26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15년 7월 6일 편집위원회에서 게재가 결정되었음.
Abstract
Status and Outlook on the Popularization of Chinese Poems
29)Bak, Dongwuk*
While the popularization of a classic has been discussed in many researches, it’s not too much to say that there is almost no research on the popularization of Chinese poems.
The popularization of Chinese poems was simply discussed in the researches focusing on the general popularization of a classic. Even when Chinese poems were discussed as the main theme, such researches tended to concentrate on the translation issues. Chinese poems are one of the fields which are difficult to be popularized among diverse kinds of classics up to now.
The popularization of Chinese poems has been led by several authors up to now and the follow-up researches couldn’t exceed the previous researches in reality. The young researchers who will lead the popularization of Chinese poems are required. The initiatives and abilities to cope with the needs of readers in these days are required on the basis of the previous achievement.
Another issue is too schematic form. The criticism has to be advanced to expose the life of an author and the aesthetic feeling of works beyond tautology or impressionist criticism.
Furthermore, the follow-up researches generally lose the keenness once after the complete translation. It’s one of the reasons why we need rewriting in various styles.
The books related to Chinese poems published in the past monotonously dealt with flowers, seasons, national holidays or regions. It’s time to infuse new warmth and breath into ecology, old
age, a variety of animals and plants and venues by expanding the scope of stories now.
[Key Words] Chinese Poems, Popularization, Humanities, Storytelling, Rewriting
* Assistant Professor, Hanyang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