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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의 달과 ‘조선의 큰 어머니’ 장계향
    한국한시/한국한시협회 2023. 5. 5. 00:09

    가정의 달과 ‘조선의 큰 어머니’ 장계향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지금은 인구절벽 시대에 코로나19로 어지러운데 ‘혼살(혼자 살기)’과 ‘비혼족’이 점점 늘고 있어 가히 풍진(風塵) 세상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에 ‘사람 인(人)’이라 쓰고 있지 않은가. 가정이 해체되는 ‘위기의 시대’라,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가정의 소중함과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불교 경전에 “믿음으로 가정이 화평하면 살아생전에 복과 좋은 일이 저절로 찾아온다. 복이란 자신의 행위에서 오는 결과일 뿐 결코 신(神)이 내려 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가정의 중심은 어머니이다. 율곡의 어머니 ‘사임당(師任堂)’처럼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은 효의 실천과 10남매 자녀교육에 본보기를 보였고, 가정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남겨 ‘위대한 어머니상’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본관은 안동. 임진왜란 중인 1598년(선조 31) 안동에서 장흥효(張興孝)와 권사온 사이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유학자 이시명(李時明)의 부인이며, 이현일(李玄逸)의 어머니로 지와 덕을 겸비한 현모양처로도 이름이 높다.

    부친인 경당(敬堂) 장흥효는 퇴계 이황의 심학(心學)적 도통(道統)의 합일점을 이룬 인물이다. 장계향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지경(持敬)과 수신(修身)을 배워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10세 전후에 지은 ‘학발시(鶴髮詩)’·‘소소음(蕭蕭吟)’·‘성인음(聖人吟)’ 등은 시상이 탁월한 명시로 꼽힌다.

    채제공은 “중국의 <시경> 삼백 편 중에도 여성 작품이 많지만 ‘학발시’ 만한 것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15세 이후에는 남존여비의 윤리체계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자신의 시문·서화가 부인의 길이 아니라 하여 그만두었다.

    19세에 부친의 제자이면서 이미 1남 1녀를 둔 이시명과 결혼, 6남 2녀를 두었다. 슬하에 이휘일·이현일 등 대학자를 많이 길러내어 송나라 정호(程顥)·정이(程頤) 형제를 낳은 후부인(侯夫人)에게 비견되기도 한다.

    장계향은 자녀들에게 늘 “너희들이 비록 글 잘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해도 나는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착한 행동 하나를 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아주 즐거워하여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또한 그녀는 “함께 사는 것이 우주의 질서다. 함께 사는 최고의 도덕률은 나누고 돌봐주는 것이다.”라는 ‘나눔의 철학’을 가졌다. 그리하여 “다시 태어나도 재령 이씨 집안의 노비로 태어나고 싶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비에게 사랑을 베풀었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도왔다. 이처럼 단아하고 엄하면서도 부덕(婦德)과 학식이 높으므로 세상에서 ‘여중군자(女中君子)’라고 불렀다.

    장계향은 특히 초서에 뛰어났다. 오세창은 “장씨 부인은 그 읊조리는 시에 나타나고 붓끝으로 써내는 것은 풍아(風雅)의 체와 종요(鍾繇)와 위부인(衛夫人)의 법을 갖추고 있다.”라고 상찬했다.

    정조도 장계향의 서첩이 있다는 말을 듣고 올리라고 명해서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장계향은 그림에도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여 나비를 잘 그렸고, 인두를 불에 달구어 그리는 낙화(烙畵)에도 능했다.

    장계향은 9편의 시와 각종 음식의 조리법을 적은 한글 요리책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을 편찬했는데, 이는 ‘맛의 철학’을 음식으로 풀어낸 문화유산으로 현존하는 동아시아 최고의 한글 요리서이다.

    장계향은 셋째 아들 이현일이 이조판서에 오르자 정부인(貞夫人) 교지를 받았다. 차별 없는 평등과 인간애를 나누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조선의 큰어머니’. 장계향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女中君子亂中生(여중군자난중생) 여자 중의 군자 장계향은 임진왜란 중에 태어났고

    嚴父之敎桂樹萌(엄부지교계수맹) 엄한 부친 교훈 받고 계수 향 이름 지었네

    師任吟詩風雅歎(사임음시풍아탄) 신사임당의 시처럼 풍류와 문아 있어 칭찬받았고

    夫人筆法骨筋驚(부인필법골근경) 위부인 필법처럼 근육과 뼈대가 있어 놀라게 했네

    聖行聖訓天生學(성행성훈천생학) 성인의 행동과 가르침을 태어나면서부터 배웠고

    婦德婦紅知味耕(부덕부공지미경) 부덕이 있고 솜씨가 있어 음식 요리법을 가르쳤네

    絶後空前閨範發(절후공전규범발) 앞서도 없었고 뒤에도 없을 부녀자의 범절 이뤘고

    八龍闕里久隆盛(팔룡궐리구융성) 큰 인물 8명 나와 공자의 고향처럼 오래 융성했네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2 최초의 한글 요리책을 쓴

    '장계향' (1598~1680)

    SNS와 1인방송 등 개인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요리를 원한다면 언제든지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그 방법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한 요즘.

    그렇다면, 한글로 만든 최초의 요리책은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최초의 한글 요리책인 <음식 디미방>을 쓴 저자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일곱 아들을 대학자로 키워 낸 훌륭한 어머니였습니다.

    셋째 아들인 갈암 이현일 선생이 이조 판서에 오르자

    '정부인'으로 불리게 된 그는

    바로 이문열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 장계향.

    소설가 이문열은 장계향의 남편인 이시명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장계향은 매일 등잔불 아래에서 평생을 만들어 온 한국 전통 요리법을 한글로 써내려갔습니다.

    1600년대 경상도 양반집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 요리법, 발효식품을 만드는 법, 식품 보관법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는 <음식 디미방>을 통해 당시 여성들은 낯선 재료를 요리하는 법,

    반찬을 맛있게 만들어 시어머니께 사랑받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찰랑찰랑', '질벅질벅' 같은 생생한 한글을 사용해 맛깔나게 설명한 부분은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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