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裏寒梅’ 跋文
癸卯年도 어느덧 立春雨水가 지나고 곧 驚蟄이 臨迫해 오고 있다. 今年 봄은 3年餘만에 코로나19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맞이하는 새봄이라 詩客들의 感懷가 크리라 생각됩니다.
지난달 公募한 風雅56號에 揭載할 ‘雪裏寒梅’는 330餘首가 接受되어 考選結果 저 멀리 濟州에서 女性詩客 송인주님이 壯元을 차지하였습니다.
梅花하면 화정 임포(和靖 林逋)와 退溪先生이 먼저 생각난다.
송나라 임포(林逋·967-1028))의 시 ‘산원소매(山園小梅)’가 ‘임화정집(林和靖集)’권2에 실려 있다. 임포는 40세 전후에 중국 항주 서호(西湖) 부근 고산(孤山)에 은거해 ‘매처학자(梅妻鶴子)’를 자처하며 以梅爲妻,以鶴爲子로 삼으며 살았다. 一生 獨身으로 梅花 300그루를 심고 鶴 두 마리를 기르며 20년간 성안에 들지 않고 風流 生活을 즐겼다 하니 과히 그의 梅花사랑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할 것이다.
退溪先生 역시 梅花 매니아로 梅花詩만 百餘首 가까이 남겼다 옥당억매(玉堂憶梅:옥당에서 매화를 추억하다)는 그중 當然 壓卷이다. 이 詩는 退溪가 丹陽郡守로 赴任하기 6년 전 1542년(중종 37년) 42세 때 弘文館 副校里로 任命받고 宿直을 서며 故鄕에 내려가 글공부를 하며 弟子를 가르칠 生覺을 하면서 쓴 詩라고 한다.
또 梅花 관련 詩로 佔畢齋 金宗直의 詩 한수를 紹介한다.
雪裏寒梅(설리한매)/佔畢齋金宗直(점필재김종직1431∼1492)
雪裏寒梅雨後山 看時容易畫時難
早知不入時人眼 寧把臙脂寫牧丹
눈 속의 찬 매화와 비 온 뒤의 산 경치는,
구경하긴 쉬우나 직접 그림으로 그리긴 어렵다네.
그대가 매화를 감상할 줄 모른 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차라리 연지를 들고 화려하기만한 모란이나 그렸을 것을...
이 시는 佔畢齋가 16세 때에 科擧에 落榜하고 歸鄕하면서 한강의 제천정(濟川亭)벽에 붙여놓았다고 알려진 시다.
시관 괴애(乖崖)김수온(金守溫1410~1481)이 이시가 너무 출중해서 미리 士林의 싹을 자르기 위해 落榜시켰다는 고사가 있다. 이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한 詩로 지금까지도 人口에 膾炙되고 있다. 科擧에 公正性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런저런 연유로 좋은 詩가 脫落되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이번 風雅56호의 시제는 바로 이 詩에서 着眼하였는데 이 詩를 引用한 詩가 나오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우리 詩客들도 가급적 남의 시에 대한 評價에 너무 吝嗇하지말고 서로 激勵해주고 易地思之의 입장에서 敎學相長하는 成熟된 詩壇文化를 造成해 갈수 있기를 當付드립니다.
이번 壯元詩는 林逋와 退溪의 梅花에 對한 故事로 對를 絶妙하 게 놓아 詩의 格調를 한층 높여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도 좋은 詩가 많이 나오기를 期待하며 跋文에 갈음한다.
社)韓國漢詩協會 常任理事 金元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