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김승종의 문학잡설(11)] 변산바람꽃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좋은 글 2023. 3. 16. 16:03


     

     매화에 이어 바야흐로 온갖 꽃이 피거나 피려하고 있다. 천하에 소생의 기운이 일렁인다. 해마다 봄이 되면 우리는 피는 꽃에 반색하다가 꽃샘추위를 겪으며, 여러 사정과 이유로 여의(如意)치 못한 일신의 상태나 나라의 상황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이라 은유하며 유감스러워 했다. 올해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하겠지만, 봄 같지 않은 봄도 봄이 아니겠는가. 이 또한 자연 운행의 한 과정이며 인간의 삶도 이와 같아 그 추이가 직상(直上)이나 직하(直下)는 거의 없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상승도 하고 하강도 한다고 들었다. 

     지난 일요일에 안양 수리산에 가서 변산바람꽃을 오래 보았다. 작고 여리고 앙증스러운 그 꽃은 계곡을 거슬러 올라 그 끝, 아마 수암천의 원천일 작은 시내 부근 기암(奇巖) 사이 잔설(殘雪)을 두른 작은 시냇가에서도 무슨 은사(隱士)처럼 허리를 비스듬히 세우고 얼굴을 펴고 있었다. 가끔 이 산 저 산을 오르내렸고 수리산에서도 몇 차례 그랬지만, 한 번도 길을 벗어나 풀섶에 들어가 서식하는 야생화를 찾는다거나 주목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모양도 이름도 모르는 초보에게 그날 안내를 자청한, 취향 이상의 의의를 오래 견지하며 해마다 긴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전국의 야생화를 탐방하는 아니 봉심(奉審)하고 보호하는 고교 동기에게는, 내가 무슨 야생화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변산바람꽃은 변산에서 발견된 한국 특산종이며 1993년부터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키 10㎝ 내외, 땅속 덩이뿌리 맨 위에서 줄기와 꽃받침이 나오고, 꽃잎은 꽃받침 안쪽의 수술과 섞여서 깔때기 모양이다. 꽃받침의 길이는 3~5㎝, 너비는 1~3㎝. 노랑 녹색 꽃잎, 노랑 녹색에다 흰색 자주색 연두색 꽃술.  

     꽃을 다룬 시가 많다. 시의 나라에서 꽃은 자주 주인이거나 그 동반자였으며 희극, 비극, 희비극, 어느 구조에도 잘 어울렸다. 우리 고전 한시(漢詩)에서도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등은 다하지 않는 소재가 되었거나 주제로 표상되었고, 근현대에 와서도 우리에게는 이미 우리의 영원한 시, 소월의 「진달래꽃」과 미당의 「국화옆에서」가 있다. 앞으로도 우리 시사에 꽃시가 추가될 것이다. 

     까마득한 공중에서

     연분홍 꽃잎 한 장 날아와

     내 가슴에 닿았다

     노을이 부드LOVE게 출렁거렸다

     삶이 꽃이 된 이 순간,

     이젠 아무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 「화양연화(花樣年華)」/김남권

     그날 친구가 은밀한 눈짓으로 가리켜, 처음 변산바람꽃을 보았을 때, 아마도 나는 이 시의 1, 2, 3행과 같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까마득한 공중에서 … 날아와’가 아니라 ‘까마득한 땅속에서 … 솟아올라’였기는 하지만, 기적 같은 해후라는 취지와 묵묵한 탄성은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화자는 그 감동을, 놀랍게도 ‘노을이 부드LOVE게 출렁거렸다’고 은유하였다. 해질녘 서쪽 하늘에 조성된 검붉은 황금 노을, 그 아름답고 부드럽고 장쾌하고 광대한 장관으로 그 감동의 질량을 묘사하다니. 노을은 시에 자주 등장하지만(소생도 「해질녘」이란 시를 썼다), 이렇게 내면의 한 감동을 노을로 형상화한 사례는 과문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도 ‘연분홍 꽃잎 한 장’에 촉발되어. 당나라 시인 이상은(813-858)의 명구, ‘夕陽無限好(석양무한호) : 석양은 한없이 아름다운데’[「등낙유원(登樂遊原)」]도 연상케 하는 압권이다. 그 다음으로 화자는 겸손이겠지만 비루할지도 모를 자신의 삶이 꽃이 되었다고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꽃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주변 사람들도 자신에게서 떠나지 말기를 희망한다. 아, 어디 화자만 그러하리...    

    출처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http://www.suwonilbo.kr)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작나무, 그 결연(決然)한 겨울  (0) 2023.03.21
    "마음(心) 공부"  (0) 2023.03.21
    경중완급(輕重緩急)  (0) 2023.03.11
    한턱이란 말을 아시나요?  (0) 2023.03.11
    3달러가 맺어준 인연  (0) 2023.03.08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