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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亭序(난정서) / 王羲之(왕희지)습서 2022. 11. 7. 07:46
蘭亭序(난정서) / 王羲之(왕희지)
중국 역사상 최고명필은 당연 동진(東晉)의 왕희지 (王羲之, 301~361)이다. <난정서(蘭亭序)>는 그가 남긴 행서첩으로 천하제일행서 (天下第一行書)이다.
동진 묵제의 영화9년(353) 3월 3일 회계산음(저장성 소흥) 난정에서 당시의 명사 41명이 모여 계추를 하고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유흥을 하고 시흥에 젖었다. 그때 지은 시집의 서를 왕희지가 썼고 옛날에는 『임하서(臨河序)』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난정서』라고 하며 또 『계첩(稧帖)』이라고도 한다.
당태종은 왕희지를 숭배하여 그의 글씨를 많이 수집하였는데, 특히 『난정서』에 관심이 깊어 지영(智永)의 제자 변재(弁才)에게 사자 숙익(肅翼)을 보내어 이것을 교묘히 빼돌렸다고 전한다. 태종은 그것을 평생 옆에 두고, 임종에 임하여 소릉(昭陵)에 순장하라고 하였다 한다. 현재 전하는 것은 정관년간(貞觀年問, 627~649)에 내부에서 꺼내어 베낀 것과 그것을 다시 베낀 것들이다. 왕희지의 대표적 행서이며 전28행으로 이루어졌고 수소(隨所)에 도말(塗抹)한 문자가 있고, 고서(稿書)의 체를 이룬다. 또 묵탁에는 구양순의 임사라고 하는 정무본(定武本)이 대표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난정서 [蘭亭序, Lantingxu]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永和九年, 歲在癸丑, 暮春之初, 會於會稽山陰之蘭亭, 脩禊事也.
永和 9년 계축년(353년), 3월 초승에 會稽 山陰縣의 蘭亭에 모여서 禊事를 행하였다.
▸脩禊: 『고문진보』에는 修禊
群賢畢至, 少長咸集, 此地有崇山峻領, 茂林脩竹, 又有清流激湍, 暎帶左右, 引以爲流觴曲水列坐其次.
뭇 賢士들이 다 모이고 젊은이, 늙은이들이 모두 모였도다.
이곳은 높은 산과 가파른 고개, 무성한 숲과 길게 자란 대나무가 있다. 또한 맑은 물과 격동치는 여울이 허리띠를 두른 듯이 좌우로 이어져 春光이 그 위에 반짝이며 흐르고 있으니, 이 물줄기를 끌어다가 流臨曲水를 만들고 차례
에 따라 벌려 앉았다.
▸流傷曲水: 술잔을 띄워 보낼 수 있는 물굽이
▸峻領: 고문진보에는 峻嶺으로 쓰여 있다. 의미로 보아 '嶺'을 쓰는 게 맞지만, 원문에서 '領'을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당시에는 서로 글자를 통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당나라 때 쓰여진 臨本 가운데 특히 褚遂良의 임본 중에는 ‘嶺’으로 쓰여진 것이 다수 있다. 이러한 임본들을 일컬어 [領字從山本], 즉 ‘山자 아래에 領자를 쓴 판본’이라 부른다.
▸暎帶: [고문진보]에는 映帶로 쓰여 있다. 의미는 같다
無絲竹管弦之盛, 一觴一詠, 亦足以暢叙幽情.
비록 絲竹管絃의 성대한 연주는 없으나 술 한 잔 마시고 시 한 수 읊조리니 그윽한 마음속 情懷를 풀어내기에 足하도다.
▸管弦: 고문진보에는 ‘管絃’으로 쓰여 있다. 의미는 같다.
是日也, 天朗氣清, 惠風和暢, 仰觀宇宙之大, 俯察品類之盛, 所以遊目騁懷, 足以極視聽之娛信可樂也.
이날이야말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大氣는 맑았으며, 봄바람은 따스하고 부드럽게 불었다. 우러러 宇宙의 넓음을 觀望하고, 굽혀서 만물의 풍성함을 살펴보니, 눈가는 대로 바라보다가 想念의 나래를 펴기도 하며, 보고 듣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니, 실로 즐겁기 그지없노라.
夫人之相與, 俯仰一世, 或取諸懷抱, 悟言一室之內, 或因寄所託, 放浪形骸之外.
무릇 사람들이 서로 더불어 내려다보기도 하고 올려다보기도 하면서 한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떤 이는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가지고 마주 앉아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기도(悟言)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자신을 맡겨, 육체의 밖에서 자유롭게 노닐기도 한다.
(무릇 인간이 서로 더불어 한 세상을 살아감에, 어떤 사람은 유교의 가르침을 따라 좁은 방 안에서 깨달은 바를 토론하며 살아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도교의 가르침을 받아 세상이나 육신의 속박을 벗어나 유유자적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雖趣舍萬殊 靜操不同, 當其欣於所遇蹔得於己, 怏然自足不知老之將至.
비록 취향은 만 가지로 다르고 성격에 따라 조용함과 시끄러움(靜操)이 같지 않지만, 각기 자신이 처한 경우가 마음에 드는 때를 만나면 잠시 자신의 뜻을 얻은 양 우쭐하여 또는 앙연히 스스로 만족하여 곧 늙음이 닥쳐오는 것조차 모르고 지낸다.
▸趣舍: 고문진보에는 取舍
▸蹔得: 고문진보에는 暫得
▸怏然: 快然의 誤記이냐에 관하여 논란이 있다.
▸不知老之將至: 고문진보에는 ‘曾不知老之將至’로 曾을 덧붙여 놓았다.
及其所之旣倦, 情隨事遷 感慨係之矣. 向之所欣, 俛仰之間 以爲陳迹 猶不能不以之興懷.
그러나 급기야 그 즐거움에도 권태를 느끼니, 자신의 권태로운 감정이 일을 따라 옮겨가서 결국엔 감회가 그것을 잇게(係=繼) 된다. 지난날에 즐겼던 일이 잠깐 사이에 옛 자취가 되어버리니, 감회가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고문진보에는 猶不能不以之興懷를 尤不能不以之興懷로 표기함.
每攬昔人興感之由, 若合一契, 未嘗不臨文嗟悼, 不能喩之於懷.
그러므로 옛사람이 감회에 젖었던 까닭을 살펴볼 적마다 마치 계인(契印)이 하나로 꼭 들어맞는 것과 같아, 옛 문장을 대함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 감회를 어디다 비유할 수가 없도다.
▸每攬: 고문진보에는 每覽으로 쓰여 있다. 攬은 왕희지의 증조부의 이름(王覽)을 諱한 것.
固知一死生爲虛誕 齊彭殤爲妄作.
진실로 死와 生이 하나라는 것이 허황한 거짓이요, 彭祖와 요절한 자가 같다는 것도 망령되게 지어낸 것임을 알겠다.
後之視今, 亦由今之視昔, 悲夫!
후세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를 보는 것도, 지금의 우리가 옛날 사람을 보는 것과 같으리니, 슬프도다!
▸亦由今之視昔: [고문진보]에는 ‘亦猶今之視昔’으로 기재함. 由와 猶는 통용된다.
故列敘時人錄其所述.
雖世殊事異所以興懷其致一也, 後之攬者 亦將有感於斯文.
고로 연회에 참석한 지금 사람들을 순서대로 列記하고, 이들이 지은 시를 수록한다.
비록 세상이 달라지고 세상일이 바뀔지라도 사람이 感懷에 젖게 되는 까닭은 하나이니 장차 이 글을 보는 사람도 (내가 석숭의 옛 문장에 감회를 느끼듯) 이 글에서 느끼는 감회가 있으리라.
▸攬者: 고문진보에는 覽者로 기재됨. 왕희지는 王覽의 증손자이므로 覽을 쓰지 못하고 攬을 씀.
[출처] 난정서(蘭亭序)-왕희지(王羲之)|작성자 삼을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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