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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스님의 한국학에세이 시즌2] <20> 훈민정음과 불교의 관계역사/한국사 2022. 10. 23. 22:34
[문광스님의 한국학에세이 시즌2] <20> 훈민정음과 불교의 관계
- 문광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동국대 HK 연구교수
한글은 왕실과 성리학자, 불교계의 합작”
동궁과 수양ㆍ안평, 변음토착에
공헌한 정의공주 등도 나서서
불경언해에 이르기까지 관여
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 역시
중국어 음운학 실력을 바탕으로
세종 보좌, 훈민정음 창제 기여
한글 창제의 완성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것은 신미대사와
학조ㆍ학열스님 등 그 제자들
특히 음성연구 성명기론 대가
신미대사 영향력은 지대했다
신미대사 진영. 불교신문 자료사진
훈민정음 다시 보기
10월7일 영축총림 통도사에서는 576돌 한글날을 맞이하여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대종사의 각별한 관심 아래 한글과 불교의 연관성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알다시피 지금 세계는 한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류(Hallyu)’와 함께 ‘한글(Hangul)’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이미 등재되었으며 이제 한글은 세계가 그 우수성과 과학성을 인정하고 있다. 전 세계인들이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음악과 문화를 향유하는 지금의 분위기가 20~30년 더 흐르게 되면 우리의 말과 글도 세계의 주요한 언어로 등극할 가능성이 있다. 모르긴 해도 한국어에 능한 외국인들이 한국의 영상물에 직접 영어로 자막을 달아 올리는 현상이 조만간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한글을 공부하고 언어학적으로 더 깊이 연구하다가 훈민정음 창제에 관한 학술연구에까지 엄밀하게 접근해 오게 된다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한글의 위대성을 더욱더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독창적인 한국문화의 정수인 한글에 대해서도 더욱 깊고 넓은 연구로 지평을 확대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반포하고 한글을 보급한 핵심주체라는 진실에는 조금의 의심도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언어학과 음운학에 대한 지식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한글의 1인 창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세계적인 언어학 학술대회에서도 세종대왕 혼자서 한글을 창제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제왕적 봉건왕조를 감안한 수사(修辭) 정도로는 읽어줄 수 있지만, 엄밀한 학문의 세계에서 계속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정보와 과학의 시대에 여전히 신화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훈민정음은 어떠한 과정을 거치면서 창제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지성이 동원되었으며, 어떠한 음운학적, 음성학적, 문자학적 학술자료가 함유되었는지를 밝히는 일은 세계문화의 중심으로 발돋움해 나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학술계가 마땅히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인 것이다.
10월7일 통도사 해장보각에서 개최된 훈민정음 특별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있는 정광 교수(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와 토론자인 필자 문광스님 모습.
한글 창제과정 다시 공부하자
이번 학술대회에서 고려대 국문학과 명예교수인 정광(鄭光) 선생의 <새로운 시각으로 본 훈민정음 제정의 경위 - 세종의 새 문자 제정에 참여한 인물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의 토론자로 참석하게 되었다. 장장 90쪽이나 되는 분량의 발표문을 받아든 순간 매우 놀랐다.
동국대 불교한문아카데미에서 <몽산법어>를 조선 초 신미대사의 언해본으로 강의도 해 보았고, 항상 훈민정음과 불교의 관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 자신의 무지에 대해서 새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훈민정음과 관련된 지식은 너무나 얄팍하고 피상적이었다는 것을 정광 교수의 평생의 연구 성과를 접하면서 느낄 수가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훈민정음에 관련된 본격적인 공부를 해 보아야겠다는 발심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학술발표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한국인은 한국을 잘 모른다’고 했던 말은 훈민정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글 첫 글자는 왜 기역(ㄱ)인가?
정광 교수의 논문은 국어학자로서 평생을 훈민정음 연구에 전념해 온 결과들을 요약 정리하여 다시 대중들에게 알려준 내용이었다. 많은 내용 중에서도 ‘왜 한글의 첫 글자는 기역(ㄱ)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이에 대해 대답하지 못하는 국어학자들이 많다는 말씀은 뼈아픈 것이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라는 속담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것에 대해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은 것이다.
나는 평소에 ‘기역(ㄱ)’이 한글의 첫 글자가 된 이유를 <훈민정음 해례본>의 오행(五行)에 입각하여 ‘ㄱ(목)’, ‘ㄴ(화)’, ‘ㅁ(토)’, ‘ㅅ(금)’, ‘ㅇ(수)’의 순서로 배치되어 역학적(易學的)으로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의 상생의 관계로 구성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인식 역시 틀린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자(字)’가 아닌 ‘음(音)’이므로 음성학적으로 더욱 복잡다단한 원인은 성운학적인 방면에서 탐색해 보아야 한다.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서 알게 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세종 당시 처음 새 문자를 제정할 때 고려 후기에 원(元)나라가 제정한 파스파 문자와 같은 범자(梵字) 계통의 문자들이 가장 많이 참고되었다는 사실이다. 파스파 문자와 그 모델이었던 티베트의 서장(西藏) 문자, 그리고 고대 인도의 실담문자도 모두 k, kh, g, gh의 순서로 배열되어 ‘k’로 시작하고 있다. 이처럼 정광 교수는 세종대왕의 새 문자 제정에 관해서 그간의 통설과 다른 시각들을 평생의 연구업적을 통해 많이 제시해 주었으며, 이는 앞으로의 한글연구에 커다란 시사점을 제시해 주었다.
세종대왕과 신미대사의 만남
2019년에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에 신미대사를 비롯하여 불교계가 큰 공헌을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 개봉 전부터 역사를 왜곡했다는 평가와 함께 관객 100만명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한번 냉정하게 한글의 창제 과정에 대한 방대한 학술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한글은 세종대왕의 엄청난 비밀 프로젝트였다. 왕실과 성리학자, 그리고 불교계의 거대한 합작이었다고 봐야 옳다.
동궁(東宮)과 수양(首陽), 안평(安平), 그리고 한문 구결 아래 토를 달 때 음을 변화시키는 변음토착(變音吐着)에 큰 공헌을 했던 정의(貞懿)공주 등이 아버지 세종을 도와 불경언해에 이르기까지 깊이 관여했다. 그리고 성삼문과 신숙주 등의 집현전 학자들 역시 중국어와 음운학 방면의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대왕을 보좌하며 국자(國字) 창제에 기여했다. 그리고 한글 창제의 완성을 위해서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것은 신미대사와 그의 제자인 학조, 학열 등의 불교계 스님들의 연구에 크게 힘입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인간의 발화(發話)에 유용한 음성에 관한 연구인 성명기론(聲明記論)의 대가였던 신미대사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한류의 세계적인 유행과 함께 한국어와 한글 역시 세계적인 언어와 문자로 대두될 것이다. 이제 훈민정음의 창제에 대한 진정한 연구 역시 모든 편견을 버리고 다시 새롭게 펼쳐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불교신문 3739호/2022년10월25일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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