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스타 신영균은 이제 95세가 넘어 백수를 바라본다. 필자도 인터넷에 나와 있는 나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TV 화면에 가끔 보이는 정정한 모습에 또 놀란다.
그가 출연한 영화 가운데 필자의 기억에 생생한 영화들은 성춘향, 상록수, 연산군 등이다. 공군 파일럿을 그린 빨간 마후라도 있다. 여러 배우 중에서 지금은 유명을 달리 한 최은희와 공연한 영화들이 많다.
당시 신영균과 인기를 경쟁한 배우가 신사로 호칭을 받았던 김진규다. 그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영화에서 최은희와 공연을 했다.
춘향전은 최무룡 김지미와 김진규 최은희의 대결로 장안의 화제가 된 영화다. 두 영화의 감독은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신상옥과 홍성기였다. 이 대결에서 신상옥의 성춘향은 대박을 거둔 대신 최무룡 김지미의 춘향전은 참패했다.
이 영화의 실패로 홍성기 감독은 아내 김지미와 결별했고 최무룡은 간통혐의 인신이 구속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무룡은 그 후 김지미와 결혼하여 영화사를 만들어 영화제작에 나섰지만 실패를 거듭한다.
배우가 영화를 제작하면 망한다는 속설이 있다. 김진규 최무룡 또 여러 명의 스타들이 영화에 손을 댔다 실패했다. 그리고는 화려한 은막의 뒤안길에서 쓸쓸히 퇴진했다.
당시 청춘스타 신성일은 영화보다는 정치가가 되길 희망한 것일까. 신성일은 배우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정치가로서는 실패한 경우다.
그런데 영화를 제작 안 한 배우가 있었다. 바로 신영균이다. 서울치대를 나와 치과를 운영했던 신영균은 배우를 하면서도 병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얼마나 인색한지 주위에서 구두쇠라는 별명을 얻었다.
신영균은 착실하게 돈을 모아 영화는 제작을 안 하고 부동산에 손을 댔다. 신문에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명보극장을 인수하고부터다.
사업에 실패하고 어렵게 사는 배우들은 신영균을 비난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영화인들은 그가 혼자만 잘 살려는 자린고비라고 혹평을 했다. 이런 비난을 받으면서도 신영균은 내색하지 않고 착실하게 돈을 벌었다.
20년 전 남제주군 남원읍의 2만 4천여평 대지에 사재 100여억원을 들여 한국 최초의 영화박물관인 '신영 영화박물관'을 개관했다. 그리고 2010년, 영화 및 예술계 인재 양성을 위해 500억원 상당의 사재인 서울 중구에 위치한 명보극장과 국내 최초이자 최대의 영화박물관인 제주도 신영영화박물관을 영화계 및 문화예술계의 공유재산으로 기증했다. 영화계에서 그는 구두쇠가 아니었구나 하는 찬사가 터졌다.
최근에는 국민들이 깜짝 놀랄 큰 결심을 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위해 서울 강동구의 사유지 4000평을 부지로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비록 땅이 그린벨트라고 하지만 서울 땅값은 천문학적이다.
신영균이 기증한 땅은 이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낚시를 즐기던 한강 변이라고 한다. 그는 ‘여태껏 살면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아직 기념관 하나 없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이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유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고 땅 기증이유를 들었다.
지난 80년 초 청주국립박물관을 건립케 한 이는 명암약수터 고(故) 곽응종 할아버지였다. 구두쇠 중 구두쇠로 유명했던 분이다. 그가 5만평에 가까운 땅을 기증하여 청주에 국립박물관을 들어서게 했다. 영화계의 왕소금으로 소문난 신영균 선생이 또 한 번 미라클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위대한 국민 배우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