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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종의 문학잡설(25)] ‘헌 의자’의 귀환
    좋은 글 2023. 6. 23. 02:10

     

    [김승종의 문학잡설(25)] ‘헌 의자’의 귀환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지난주에 우리는 문창갑의 「늙은 의자에게도 온다」를 읽고, 우리 삶의 한 국면을 풍경처럼 바라보면서 그리고 자신의 문제로 고즈넉이 성찰할 수 있었다. 우리는 다음 시에서 또 ‘의자’를 매개로 한 시인의 통찰에 향수 같은 그 긍정의 정서에 젖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의자는, 우리 일상에서 자주 오래 같이 하는 공간이자 시간의 형상이다. 또 가구나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동반자이며 우리 몸의 일부이기도 하다고 할 수 있다. 

     

    사월인데도 원주 매지리 산자락은 축축하고

    일기는 불순해서 날이 찼다 한낮에도 이불 덮고

    한참 씩 오그려 누워 있곤 했다 의자가

    몸에 맞질 않아 회의실 의자로 바꾸었는데

    여전히 등줄기가 뻐근하고 결리기만 해서

    휴게실 의자는 어떨까, 또 바꿔 봤지만

    그 역시 등받이가 불거져 딱딱했다 무얼 오래

    읽고 쓸 수가 없었다 급기야 감기가 들고

    등허리며 가슴으로 요통인 듯 담인 듯한

    통증이 퍼져 잠 못 이루는 날이 이어졌다

     

     여전히 음습한 사월 날씨에 몸 상태도 개운하지 않고, ‘무얼 오래 읽고 쓸 수’ 있어야 하는 우거(寓居)하는 화자는 ‘의자가 몸에 맞질 않아’ 고통을 겪는다. ‘회의실 의자’로 ‘휴게실 의자’로도 ‘바꿔 봤지만’, 여전히 불편했고, 결국 감기에 걸려 등허리와 가슴에 통증이 퍼져 ‘잠 못 이루는 날이 이어졌다’. 요통이 심각한 병증은 아니지만 무척 괴롭고 일상에 고약한 큰 지장을 끼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화자는 온돌방 여관에도 가보고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가보기도 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어떤 ‘헌 의자’와 조우한다. 

     

    인근 흥업면의 여관엘 가 묵어도 보고

    의원을 찾기도 하며 사월을 허덕허덕 건너다가

    어느 날 집필실 창밖 베란다에 놓인 헌 의자에

    눈이 갔다 걸터앉아 볕을 쬐거나 골짜기를 

    내려다보거나 하는 용도로 거기 놓였을 그 

    철제 의자가 몸에 맞았다 궂은비에 젖었다

    말랐다 하며 먼지 푹 뒤집어쓴 낡은 의자가

    제일로 편했다 한시름 덜고 나서 생각하니,

     

     ‘몸에 맞’는 그 ‘헌 의자’는 화자가 의식하지 못 했던 ‘궂은비에 젖었다/말랐다 하며 먼지 푹 뒤집어쓴 낡은’ ‘철제 의자’. 낡고 때로 지저분할 뿐만 아니라 엉덩이 쿠션도 없고, 깨끗하고 윤나며 푹신한 격조의, 사용하던 의자나 ‘회의실 의자’, ‘휴게실 의자’보다 값도 헐하다. 우리는 여기까지 화자의 평명한 진술을 평이하게 따라왔는데, 그러나 이제 우리는 화자가 그래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좀 긴장된다. 이미 우리는 ‘헌 의자’의, ‘볕을 쬐거나 골짜기를 내려다보거나 하는 용도’와 상태에 어떤 의도의 예징이 감돌고 있어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무얼 오래 읽고 쓸 수’ 있게 하는 용도와 대조되며, ‘한낮에도 이불 덮고 한참 씩 오그려 누워 있’는 ‘이불’의 상태와는 너무 다르다. 이제 의자에 앉아도 편해진 몸, 화자는 이 일련의 과정에 한 생각이 없을 수 없다.    

     

    내 몸이 헌 의자에 잘 맞는 것이 다행하고

    별로 비싼 인간 같지가 않아 안심이 되었다

    탈이 몸에 찾아온 것은 꼭 날이 궂거나 의자가

    안 맞아서가 아니었고, 긴 세월 함부로 몸을 

    굴려서도 아니었고, 그냥 내가 헐해서였다

     

     화자는 자신이 ‘별로 비싼 인간 같지가 않아 안심이 되었다’한다! 그리고 탈이 났던 건 날씨, 의자, 돌보지 않았던 몸이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헐해서였다’는 근거 없는 자각을 근거로 제시한다. 자신도 낡은 ‘철제 의자’처럼 헐한데 각성하지 못해 빚어진 부조화의 병변이었다는 것이다. 그 ‘철제 의자’가 몸에 적합하다는 사실에 연계된 자연스러운 안분(安分) 각성, 평소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회의실 의자’나 ‘휴게실 의자’가 어울린다고 여겼다는 자의식의 노출이기도 하다. 이 표출은 자조(自嘲)인 것인가? 아닐 것이다. 분수를 헤아린 자의 자기충실, 그 자족의 여유일 것이다. 아니라면 혹 겸손인 것인가. 아닐 것이다. ‘긴 세월 함부로 몸을 굴려서도 아니었고’를 다시 읽어보면 그렇게 추정할 수 있다. 화자는 앓는 와중에 ‘긴 세월 함부로 몸을 굴려서’ 그 후유증으로 통증이 초래된 것이 아닐까 의심하였고, ‘헌 의자’를 만나고는 부정하였으나, 이 의심은 ‘그냥 내가 헐해서였다’는 근거 없으나마 그 최종 이유와 다르지 않다. 화자는 둘을 별개로 취급하지만 따지고 보면 상통하고 독자의 부인(否認)을 초래하기에, 그 시인(是認)도 함축하고 있는 미묘한 진술이다. 이 모순복합은 차라리 지난 ‘긴 세월’에의 무거운 성찰에 가깝다. 노출과 은폐로 짐짓 독자의 주의를 유도하는 화자의 자기 재량(裁量), 이 시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가. 화자는 아래에서 읽을 수 있듯, 자신이 그 통증을 겪듯 그동안 자신을 그렇게 ‘헐어’ 왔고 또 ‘어떻게 생각해봐도 별일 없고/별수도 없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마치 무슨 다짐을 하듯 독백하고 있지만 말이다. 화자는 ‘몸이 헌 의자에 잘 맞는’다는 자신의 각성과 그 ‘다행’을 ‘내가, 나의 시간에 맞게 잘 헐어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그래서 ‘기쁜, 사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담담하게 자축하였다.      

     

    바깥에 버려졌다 다시 실내로 돌아온 헌 의자와

    더불어 앉아 생각하자니 이렇게 헐해진 것은 또,

    쉰아홉 내가, 나의 시간에 맞게 잘 헐어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별일 없고

    별수도 없어 기쁜, 사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 「낡은 의자」/이영광

     

     ‘궂은비에 젖었다/말랐다 하며 먼지 푹 뒤집어쓴 낡은’ ‘철제 의자’, ‘바깥에 버려졌다 다시 실내로 돌아온 헌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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