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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샹보르성[Château de Chambord,Chambord Castle]
    카테고리 없음 2021. 5. 27. 10:35

    샹보르성[Château de Chambord,Chambord 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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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상트르 주 루아르에셰르에 있는 고성이다. 프랑수아 1세가 착공하여 루이 14세가 완공한 성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UNESCO)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프랑스 루아르 계곡에 있는 여러 고성() 가운데 하나이다. 블루아(Blois) 시에서 북동쪽으로 약 15㎞ 떨어진 곳에 세워졌으며, 행정상의 소재지는 상트르 주(Centre) 루아르에셰르(Loire-et-Cher) 데파르트망의 샹보르(Chambord) 코뮌이다.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 보르가르 성(Château de Beauregard), 메나르 성(Château de Ménars), 빌사뱅 성(Château de Villesavin) 등과 이웃하고 있다.

    블루아 백작의 옛 중세 요새를 허물고 세운 거대한 르네상스 건축물이다. 프랑수아 1세(재위 1515-1547)는 이탈리아 원정 중인 1515년 9월 마리냐노전투에서 밀라노 공국의 동맹군을 물리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샹보르 성의 건립을 지시했다. 이미 앙부아즈 성과 블루아 성이 왕실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샹보르 성은 프랑수아 1세가 단기간 머무는 사냥 별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외 왕족들이나 중요한 사절(使)들이 프랑스를 방문할 때면 늘 샹보르 성으로 초청되었는데, 웅장하고 화려한 성의 규모가 프랑수아 1세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에 좋았기 때문이다. 1519년에 시작된 공사에는 이탈리아 건축가와 프랑스의 장인들이 대거 투입되었다. 워낙 장기간 이어진 대규모 공사였고 그 주체도 프랑스 왕실이었던 탓에 샹보르 성은 건립부터 프랑스 국내외의 역사적 사건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525년 프랑수아 1세가 파비아전투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에게 대패해 포로로 잡히자 성의 공사도 함께 중단되었다. 스페인으로 끌려간 프랑수아 1세는 1526년 프랑스 영토 상당 부분을 카를 5세에게 넘기겠다는 마드리드조약에 서명한 뒤 풀려날 수 있었다. 더불어 샹보르 성의 공사가 재개되었는데, 이 시기에 내성을 둘러싼 측면 건물들이 더 늘어났다. 성이 대략적인 모양새를 갖춘 1539년 12월 프랑수아 1세는 카를 5세를 샹보르 성으로 초청해 자신의 세를 자랑할 기회로 삼았다. 그러나 1547년 프랑수아 1세는 샹보르 성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고 공사는 그의 아들 앙리 2세(재위 1547-1559) 시대로 이어졌다. 1559년 앙리 2세가 죽자 공사는 다시 중단되었고 샹보르 성은 한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성이 완공된 시점은 태양왕이라 불리며 절대왕정의 막강한 권력을 누린 루이 14세(재위 1643-1715) 때였다. 당시 샹보르 성에서는 각종 왕실연회와 사냥행사가 열렸는데, 1670년경에는 극작가 몰리에르가 자신의 작품 《부르주아 귀족》을 왕 앞에서 초연하기도 했다. 18세기 이후의 개축이 주로 내부에 집중되었고, 프랑스 혁명기에 가구와 세간 등을 약탈당하기는 하였으나 건물 자체에는 손상을 입지 않아 지금도 성은 건립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샹보르 성은 루아르 계곡의 가장 큰 성 가운데 하나로 대규모 공원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직사각형의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퉁이마다 각각 하나씩 총 8개의 원형 탑이 세워져 있다. 외성의 건물 두 채는 내성과 수평으로 이어져 있는데, 16세기에 완공된 동쪽 건물은 왕의 거처가 있었다고 해서 ‘왕의 익부()’로, 17세기에 완공된 서쪽 건물은 예배당이 들어서 있어 ‘예배당 익부’라 불린다. 중세 프랑스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도 특징이다. 해자와 모퉁이탑, 내성, 성벽, 순찰로 등 요새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구조도 프랑스 왕 샤를 5세가 14세기에 건립한 뱅센 성(Château de Vincennes)과 흡사하다. 그러나 채광을 중시한 넓은 창문, 건물들의 균형과 좌우대칭, 한쪽 벽을 없앤 개방적인 구조의 로지아(Loggia) 등은 주거 기능을 강조한 르네상스 양식에서 차용한 것들이다. 성의 내부에

    는 프랑수아 1세를 상징하는 불도마뱀과 ‘F’자가 도처에 새겨져 있으며, 왕의 사냥 장면을 묘사한 태피스트리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내성 중앙의 이중 나선형 계단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설계했다는 설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두 사람이 서로가 보이는데도 만나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성은 1840년 프랑스 역사기념물로 등재되었으며, 198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2000년에는 그 일대가 유럽연합의 생태보호 구역인 나투라 2000(Natura 2000)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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