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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氏東山草堂
최씨 동산초당
愛汝玉山草堂靜1 高秋爽氣相鮮新2
有時自發鐘磬響3 落日更見漁樵人4
盤剝白鴉谷口栗5 飯煮靑泥坊底芹6
何爲西莊王給事7 柴門空閉鎖松筠8
그대 옥산 초당의 고요함을 사랑하나니
높은 가을 상쾌한 기운과 어울려 신선도 하구나.
때로 종과 경쇠 소리 스스로 울리고
저녁 무렵엔 또 어부와 나무꾼을 만나네.
쟁반에 백아곡 어귀의 밤을 깎아 놓고
청니방 아래의 미나리를 섞어 밥을 지었다.
어찌하여 서쪽 장원 왕급사는
공연히 사립문 닫아걸고 소나무와 대나무 가두어 두었는가?
이 시는 두보가 최씨의 초당을 방문하여 주변의 경관을 통해 느낀 한적한 운치와 이웃한 서장西莊의 왕유에 대한 감회를 적은 것이다. 앞의 〈九日藍田崔氏莊〉과 연결되는 시편으로 저작시기 역시 건원 원년으로 추정된다. 최씨는 왕유의 외숙의 아들인 최계중崔季重으로 왕유의 망천별장과 동서로 이웃하고 있었다. 왕유는 만년에 송지문宋之問의 남전 별장을 얻었는데 망천의 입구에 있었다고 한다. 왕유는 안녹산의 난 때 붙잡혀 낙양의 보시사普施寺에 구금되었다. 후에 숙종이 장안으로 돌아온 뒤 안녹산을 따른 사람들을 처벌하였는데, 왕유는 그의 시와 아우 진縉이 벼슬을 받치고서 죄를 대속받은 까닭으로 태자중윤太子中允,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될 수 있었고 다시 급사중給事中에 배수되 었다. 시의 문맥을 살펴보면 왕유가 망천별장에 살다가 조정에 벼슬 살러가면서 마침내 문을 닫아걸고 소나무와 대나무를 가두어 두었을 것이다. 동산은 곧 남전산藍田山이며 또 옥산玉山이라고도 하는데, 장안 남전현의 동남쪽에 있다.
1 玉山(옥산) - 시제에 나오는 동산東山. 또는 남전산藍田山이라고도 한다.
2 相鮮新(상선신) - 서로 신선하게 하다. 여기서는 옥산의 고요한 정취와 가을의 기후가 서로 잘 어울림을 말한다. 초당의 고요함이 가을 기운의 서늘함을 끌어들여 서로 어울린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3 鐘磬(종경) - 종과 경쇠. 절에서 사용되는 악기이다. 이 구는 초당 주변에 인가가 드물다는 말이다.
4 漁樵人(어초인) - 어부와 나뭇꾼.
[有時 2구] 이 함련은 바로 제1구의 ‘靜’자를 이어받고 있다.
5 盤(반) - 쟁반. 剝(박) - 깎다. 白鴉谷(백아곡) - 지명. 초당 근처의 지명으로 밤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6 飯(반) - 밥. 煮(자) - 삶다. 조리하다. 靑泥坊(청니방) - 지명. ‘芹’은 文운에 해당됨으로 ‘蓴’으 잘못이라는 설도 있다. 모두 眞部에 속함으로 두보가 통압했을 것이다.
7 西莊(서장) - 서쪽 별장. 왕유의 별장. 두보가 놀러온 최씨의 별장에서 서쪽으로 위치하고 있어 서장이라고 한 것이다. 王給事(왕급사) - 왕유. 왕유는 당시 급사중給事中의 벼슬에 있었다.
8 柴門(시문) - 사립문. 鎖松筠(쇄송균) - 소나무와 대나무를 가두어두다. ‘鎖’는 ‘好’로 된 판본도 있다.
# 이 시는 최씨의 초당을 빌어서 왕유를 풍자하고 권계한 것이다. 첫 구는 초당을 기술하였고, 다음은 가을의 기후를 기술하였다. 3, 4구는 초당 밖에서 듣고 본 경물로 첫 구의 고요한(靜) 뜻을 담고 있다. 5, 6구는 초당 안에서 먹는 음식이 좋다는 뜻으로 둘째 구에 나오는 가을(秋)의 뜻을 이어받고 있다. 마지막 연은 서장西莊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벼슬하는 것이 은둔하는 것만 못함을 밝히고 왕유가 벼슬을 그만두고 남전으로 돌아와 노후를 보낼 것을 권계한 것이다. 아마도 최씨 초당의 정취가 바로 왕유가 살던 서장의 정취와 같았을 것이다. 시에서는 최씨의 초당을 읊지만 두보의 마음은 왕유의 서장에 가 있었으니, 이런 낙토가 있는데 어찌하여 돌아오지 않는가라는 뜻이 담겨있다.
왕사석王嗣奭의 평: 〈남전藍田〉시는 비장悲壯하고 〈동산東山〉시는 혼성渾成한데, 애써 깎고 다듬은 흔적은 없어도 절로 소쇄한 운치가 있어 각기 그 묘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앞의 시는 사람들이 그래도 배울 수 있지만, 이 시는 사람들이 도저히 배워서 도달할 수 없다.(藍田詩悲壯, 東山詩則渾成, 不煩繩削, 自有蕭散之致, 各見其妙. 然前詩人猶可學, 此詩人不能到.)
積雨輞川莊作
積雨空林煙火遲(적우공림연화지)
蒸藜炊黍餉東菑(증려취서향동치)
漠漠水田飛白鷺(막막수전비백로)
陰陰夏木囀黃鸝(음음하목전황리)
山中習靜觀朝槿(산중습정관조근)
松下清齋折露葵(송하청재절로규)
野老與人爭席罷(야로여인쟁석파)
海鷗何事更相疑(해구하사경상의)
장맛비 내리는 망천장에서 짓다
장맛비 내리는 빈숲에 밥 짓는 연기 느리게 피어오르는데
명아주 찌고 기장밥 지어 동쪽 밭으로 내간다
넓디넓은 논밭에선 백로가 날고
그늘 짙은 여름 숲엔 꾀꼬리 지저귄다
산속에서 고용함을 익히며 아침 무궁화를 관조하고
소나무 아래에서 소식하느라 이슬 젖은 아욱을 뜯는다
이 시골 노인은 다른 사람과 자리다툼 그만두었거늘
갈매기는 무슨 일로 아직도 나를 의심하는가
이영주(서울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