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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종의 문학잡설(9)] ‘혼술’ 권하는 사회
    좋은 글 2023. 3. 1. 13:38

     모 출판사로부터 술 이야기를 다룬 시들을 해설하는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다며, 중국시를 전공한 다섯째 형수님이 의견을 물어왔다. 요즘 또 음주 행각에 기인한 추태와 사고가 많아졌습니다, 코로나 제약이 풀리자 거리에 유행 직전처럼 주취자들이 발생해 경찰들이 애로를 겪고, 사정이 저마다 달라 어느 선에서 보호조치를 해야 하는지 직무수행법에 관련된 논란까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길에 쓰러진 술꾼을 경찰이 보호하려고 하자 막무가내로 거부하고 그러다가 어두운 골목길에 쓰러졌다가 차에 깔린 사고도 있었잖아요... 

     코로나 펜데믹 시기에 일주에 이삼일 홀짝하고 가끔 실수와 후회도 하는 처지에서 글쎄 할 수 있는 말인가 스스로 조소하면서 그러나 할 말을 한 것은 아닐까 자위하였다. 술에게 미안하고 출판사에게도 죄송하다. 술에 무슨 책임이 있으며, 출판사의 취지가 어디 술을 권하려 하는 것이겠는가. 술을 마시더라도 제대로 마셔보라, 어차피 삶에서 술을 떼기 어렵다면 이 땅의 숱한 이런저런 주당들에게 고아(高雅)한 품격의 ‘주도(酒道)를 한번 상기시키고자 하는 의도 아니겠는가. 

     술 하면 우리 근현대 문단에도 언급하지 않으면 모욕으로까지 여길 문인들이 많지만, “三杯通大道(석 잔 마시면 대도에 연통 되고), 一斗合自然(한 말 마시면 대자연과 하나 되네)”라는 전무후무한 술 예찬을 한 8세기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을 먼저 상기하게 된다. 이 시구로 유명한 「월하독작(月下獨酌)」 연작의 제1수를 21세기 주졸(酒卒)은 향수에 젖어 다시 읽었다. 

    花間一壺酒(화간일호주) 꽃 사이 술병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 홀로 따뤄 마시다가

    舉杯邀明月(거배요명월) 술잔 들어 밝은 달 마주하고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 내 그림자를 마주하니 셋이 되는군 

    月既不解飮(월기불해음) 달은 술 마시기 어렵고 

    影徒隨我身(영도수아신) 그림자는 날 흉내 낼 뿐이지만

    暫伴月將影(잠반월장영) 잠시나마 함께 

    行樂須及春(행락수급춘) 봄날 정취를 기리며 즐겨본다

    我歌月徘徊(아가월배회) 내 노래에 따라 달 배회하고

    我舞影零亂(아무영영란) 내 춤에 따라 그림자 어지럽게 흔들린다

    醒時同交歡(성시동교환) 아 대취하기 전엔 함께 즐기지만

    醉後各分散(취후각분산) 아 대취한 뒤에는 각각 흩어지지

    永結無情遊(영결무정유) 우리 길이 무정(無情)의 교유를 맺고

    相期邈雲漢(상기막운한) 저 아득한 은하에서 만나기를 기약하자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시에서 화자는 술 마시며 자신의 상태와 심경을 독백한다. 같이 마실 벗도 지인도 없는 화자는 드디어 대작하지는 못 하지만 ‘달’과 ‘자신의 그림자’를 봄날 술자리의 주붕(酒朋) 아닌 상대로 여기며. 풍취(風趣)와 고독이 습합된 이 정경은 독자의 관심과 동정을 잔 가득 단번에 술 채우듯 높이 끌어올린다. 그리고, 술에 취한 사람은 결국 화자 하나... 그래서 화자는 ‘아 대취하기 전엔 함께 즐기지만/아 대취한 뒤에는 각각 흩어지지’라고 탄식하는 것인가. 대작하였어도 술자리도 끝이 있고 취한 뒤에는 헤어지기 마련. 하지만 이 토로와 이 토로에 이은 끝 두 구, ‘우리 길이 무정(無情)의 교유를 맺고/저 아득한 은하에서 만나기를 기약하자’에는 술을 왜 자꾸 마시는지 화자가 그 이유를 함축하고 있어 보인다. 지난 시절 독해 때는 그저 앞 두 구의 마무리 여운으로만 간주하였다. 

     달과 자신의 그림자에게 길이 ‘무정(無情)의 교유’를 맺자는 제의, 하지만 이는, 차라리 그러자는 것이지 진정이 아닐 것이다.[무정(無情)의 교유 자체가 이미 아이러니이다] 화자는 그만큼 고독하며 유정(有情)하다... 그리고 ‘저 아득한 은하’는 이 세속과는 다른 차원, 즉, 그 승화된 세계, ‘선경(仙境)’일 것이다. 아시다시피 이백은 시재(詩才)와 검술(劍術)로 문무를 겸전하고 정치에 뜻을 둔 대장부, 현종(玄宗)의 조정에 겨우 한때 등용되었지만 고작 주연(酒宴)에서 주흥이나 돋우는 시를 짓는 역할에만 견제돼 울분에 빠졌고, 안녹산의 난이 발발하여서는 내부의 정쟁에 휘말려 죽을 뻔도 하였으며, 산중에 몸을 의탁하고 도교(道敎)에 귀의하기도 하였다. 이 시는 그러니까 세속 현실에 연속 좌절한 한 호방하고 총명한 정신이 술에 의지하여 그러나 맑은 자의식으로 토로한, 그 실의의 자취이다. 같은 현실에 좌절하여도 술을 싫어하거나 멀리할 수 있고 조금도 문제없으며 바람직하다. 그런데, 대체 왜 그렇게 술 마시느냐고 애정에 지친 비난을 받는 주당들도 그 일부 중독성을 의식하고 자괴(自愧)하면서도 이 시의 끝 두 구와 같은 취지의 말을 중얼거릴지 모르겠다. 현진건(1900-1943)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1921)가 또 떠오른다. 진영 등등 갖가지 갈등에 술 마시기도 하면서 결국 어느 시대나 그렇다고 한다면, 이는 주당들의 핑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출처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http://www.suwonilb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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