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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옹정기(醉翁亭記)/구양수(歐陽脩 1007-1072)
    카테고리 없음 2021. 7. 2. 18:21

    취옹정기(醉翁亭記)/구양수(歐陽脩)

    環滁, 皆山也(). 其西南諸峯林壑尤美하야 望之蔚然而深秀者琅邪也; 山行六七里漸聞水聲潺潺而瀉出于兩峯之間者醸泉也; 峯回路轉有亭翼然臨于泉上者醉翁亭也. 作亭者誰? 山之僧曰智僊也名之者誰? 太守自謂也. 太守與客으로 來飲于此, 飲少輙醉하고 而年又最高; 故自號曰醉翁也라하니; 醉翁之意不在酒하고 而在乎山水之間也; 山水之樂得之心而寓之酒也. /若夫日出而林霏開하고, 雲歸而巖穴暝하야, 晦明變化者, 山間之朝暮也; 野芳發而幽香하고, 佳木秀而繁陰하며, 風霜高潔하고, 水清而石出者山間之四時也; 朝而往하고, 暮而歸, 四時之景, 不同而樂亦無窮也. /至于負者歌於塗하고, 行者休于樹하며, 前者呼하고, 後者應하야, 傴僂提携하야, 往來而不絶者, 滁人遊也; 臨谿而漁, 谿深而魚肥하며, 醸泉爲酒, 泉香而酒洌하고, 山肴野䔩, 雜然而前陳者, 太守宴也. 宴酣之樂, 非絲非竹이라(이오); 射者中하고, 奕者勝하야, 觥籌交錯하야, 起坐而諠譁者, 衆賓懽也; 蒼顔白髪, 頺然乎其間者, 太守醉也. 已而夕陽在山하고, 人影散亂, 太守歸而賔客從也; 樹林陰翳, 鳴聲上下, 遊人去而禽鳥樂也. 然而禽鳥知山林之樂하고, 而不知人之樂하며, 人知從太守遊而樂하고, 不知太守之樂其樂也.(;) 醉能同其樂, 醒能述以文者太守也; 太守謂誰? 廬陵歐陽修也

     

    저주(滁州)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모두 산이다. 그 서남쪽의 여러 봉우리는 숲과 골짜기가 특히 아름다운데, 바라보아 울창하게 깊고 수려한 것이 낭야산이다. 산을 6~7리 걸어가면 점점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데, 두 봉우리 사이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양천이다. 산봉우리를 돌아 굽이굽이 길을 오르면 날개를 펼친 듯한, 정자가 샘가에 임해 있는 것은 취옹정이라. 정자를 지은 사람은 누구인가? 산승 지선이라. 정자의 이름을 지은 사람은 누구인가? 태수가 스스로 이름한 것이다. 태수가 손님과 더불어 이곳에 와서 술을 마시니, 조금 마셔도 곧 취하곤 하였고, 나이가 가장 많았기 때문에 스스로 호를 취옹이라 하였다. 취옹의 뜻은 술에 ,는 것이 아니요 산수의 사이에 있다. 산수의 즐거움을 마음으로 얻어서 술을 빌어 표현한 것이다. 해가 떠 숲의 안개가 걷히고 구름이 돌아와 바위 동굴이 어둑해지니, 어두웠다 밝았다 하면서 변화하는 것이 산 속의 아침과 저녁이다. 산꽃이 피어 향기가 그윽하고 좋은 나무 수려하게 자라 그늘이 무성하고 바람은 높고 서리는 깨끗하며 물이 줄어 돌이 들어난 것이 산 속의 사계절이니, 아침에 와서 저녁에 돌아가는데 사계절의 경치가 같지 않아 즐거움 또한 다함이 없다. 짐을 진 자 길가에서 노래하고 길 가던 자 나무 밑에서 휴식하며 앞선 자가 부르면 뒤쳐진 자가 대답하며 몸을 굽혀서 손을 잡아 주며 오고 가는 것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저주 사람들이 노니는 것이다. 시냇가에 임해 고기를 잡으니 물이 깊어 고기가 살찌고 샘물을 빚어서 술을 만드니 샘이 차고 맑아서 술이 향기롭구나. 산나물 안주와 푸성귀가 뒤섞여서 앞에 차려져 있는 것은 태수의 잔치이다. 잔치가 무르익는 즐거움은 현악기(絲), 관악기(竹) 때문이 아니다.

     

     

     

    구양수(歐陽脩 1007-1072)는 북송 길주 여릉(지금의 강서성 길안현, 일설에는 영풍현) 사 람이다. 字가 영숙(永叔), 號가 醉翁 또는 六一居士로, 네 살 때 부친을 여의고 집안이 가난 하였으나, 학문에 정진하여 인종 천성 8년에 진사에 급제하였고 그 후 추밀부사, 참지정사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그는 또한 문학에도 재질이 있어 산문으로는 당송팔대가의 대열에 끼었고, ()와 사()에도 걸출한 작품을 남겼다. 문집으로 구양문충공집(歐陽文忠公集)이 있다.

     

    <작품해설>

     이 글은 구양수가 저주태수로 좌천되어 폄적 생활을 하고 있던 시기(1046)에 지은 것이다. 이 글이 나오자 견해의 독창성과 문체의 참신성으로 인해서 문인들이 서로 다투어 베꼈으며, 상인들도 이 글을 구하여 세관에 바치면 세금을 면할 정도였다고 한다. 구양수는 저주의 태수로 있으면서 낭야산의 계곡에 성심과 취옹의 두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이 글은 그 중 하나인 취옹정의 유래와 그 곳의 경치, 그리고 자신의 생활과 정취를 기술한 것이다. 구양수의 문장은 간결하며 객관적인 묘사에 뛰어나다. 이 글 역시 간결하면서도 생동적인 구양수 특유의 멋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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