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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장도/이준열사카테고리 없음 2021. 6. 25. 14:44
구국의 장도
1907년 3월 24일 밤, 극비리에 창덕궁 어수당에서 대황제를 배알한 이 준은 국운을 건 대임을 맡은 비장한 결심을 굳히고 황제의 하문에 봉답한 연후 물러나면서 이 한 몸 다 바쳐 조국에 보답하리라고 굳게 다짐하였다.
1907년 4월 22일 이 준은 대황제의 위임장과 친서를 휴대하고 서울을 떠난 후 블라디보스톡에 도착, 그 곳에서 북간도 용정에서 망명중이던 이상설과 합류 시베리아 철도에 몸을 실었다. 그들은 다시 러시아의 수도 뻬데르부르크에 당도하여 이위종과 회동했다. 이곳에서 일행은 니콜라이황제를 방문하여 고종황제의 친서를 전달하고 의회에 임하는 우리 대표단의 활동에 대한 편의를 주선해 주도록 의뢰하였다.
그 후 이곳을 떠난 일행은 1907년 6월 29일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했다. 만국평화회의 의장인 러시아 대표 넬리도프에게 고종황제의 위임장을 전하고 회의에 참석하여 발언할 수 있도록 요구하였다.
만국평화회의의 장도에 오르면서 일성 이 준의 최후의 시
특사께서는 문에만 능한 것이 아니요 시에도 능하였다. 그러나 그 시는 세속 사람들이 많이 쓰는 꽃과 달을 취하는 것이 아니요, 언제나 나라를 근심 하는 애국시였다. 그런데 헤이그를 향하여 떠나기 전날에 당시 애국청년이었던 안창호, 이종호, 이 갑 세 청년이 비밀리에 송별의 잔치를 열었다.
특사께서는 그 자리에서 세 청년에게 각각 작별시를 한 편씩 지어 주었으니 이것이 최후의 시가 되고 말았다.
만국평화회의 특사 이 준四海寧無日 一家何患憂 平生吾輩事 獨立由由求
온 세상이 평안한 날이 없거늘 한 집을 어떻게 근심할소냐 우리들 평생 일은 독립과 자유를 찾는 것뿐이로다
(이종호씨에게 준 시)
治邦無上順民情 開發商工敎厚生 大衆同歸恒産日 驅貧爲國四方平
나라를 다스림에는 민정을 순하게 하며 상공을 개발하고 후생을 가르칠 것이다 대중이 한가지 생업으로 돌아오면 가난을 물리치고 나라를 위하여 사방이 평안할 것이다
(안창호씨에게 준 시)
三月春風好 紅花處處家 庭前楊柳樹 又有綠陰多
삼월철 봄바람 좋을세라 곳곳마다 집집마다 붉은 꽃일세. 뜰앞에 늘어진 버들, 또한 녹음이 많다
(이 갑씨에게 준 시)
雪晴雲散北風寒 楚水吳山道路難 今夜與君酒盡醉 明朝相憶路漫漫
눈은 개고 구름은 흩어졌으며 북풍이 찬데
초나라 물 오나라 뫼로 길이 몹시 험하구나
오늘밤 그대들과 함께 마음껏 취해보자꾸나
내일 아침 서로 생각날 때에 길이 아득하여라이 시는 특사께서 세 청년의 작별석을 떠나 다시 그 세 청년과 자택에 돌아와 한순배 (一巡杯)를 나누고 지은 것이니 벌써 다시 만나기 어려운 회포를 말한 것이다.
난국시
海牙密使一去後 誰何盃酒靑山哭
헤이그 밀사로 갔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게 되면
어느 누가 청산에 와서 술잔 부어 놓고 울어주려나
어수정 (魚水亨)에서 고종황제 어전을 물러 나올 때 만일 뜻을 이루지 못하면 죽음으로 보답하리라는 일거불갱환(一去不更還 :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음)의 뜻을 밝힌 시참(詩識)이다.風雪凍雷我死後 誰將美酒哭靑山
바람 눈 서리도 언 자리에서 내가 죽은 뒤에
누구라 장차 좋은 술 가져다가 청산에서 울어주려나부산에 도착한 일성은 며칠 후에 떠나게 될 배를 기다리며 북산에 올라 갔다가 때마침 한식 성묘하는 사람들을 보고 읊은 이 시참은 자기가 한번 가면 욕되어 돌아오기보다는 죽음으로써 항쟁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표현한 것이다.
秋風蕭蕭兮 易水寒 壯士一去兮 不復還
가을 바람 쓸쓸한데 물조차 차구나 대장부 한번 가면 어찌 다시 돌아오리
이 시는 헤이그로 떠나는 중에 한국 동포의 전별석상에서 읊은 시다.
애송시
특사께서 생전에 가장 사랑하여 항상 읊조리던 시(詩)와 시조(時調)와 노래(歌)가 있으니 그 사랑하시던 시가(詩歌)를 볼지라도 그 정신이 어떠하였던가를 넉넉히 알 수 있을 것이다.
人死稱何死 人生稱何生 死而有不死 生而有不生
誤生不如死 善死還永生 生死皆在我 須勉知死生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죽는다 이르며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을 산다 이르는가
죽어도 죽지 아니함이 있고
살아도 살지 아니하는 것이 있다
그릇 살면 죽음만 같지 못하고
잘 죽으면 도리여 영생(永生)한다
살고 죽는 것이 다 내게 있나니
모름지기 죽고 삶을 힘써 알지어다특사께서 이 노래를 특히 사랑하신 것은 욕되게 사는 것을 경계하고 영광스럽게 죽기를 수양한 뜻이다 얼마나 생사를 달관(達觀)한 명귀인가?
三尺龍劒萬卷書 皇天生我意何求
山東宰相山西將 彼丈夫兮我丈夫석자 길이의 용천검, 일만권 책을 배웠다
하늘이 나를 내신 뜻이 어떠한고
산동의 정승 산서의 장수가 저가 장부이면 나도 장부다이 시는 임경업 정군의 시(詩)다. 특사께서 이 시를 특별히 좋아하신 것은 고상한 기상(氣像)을 수양하시기 위한 것이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이 시조는 고려말년의 충신 정포은이 최후로 그 결심을 보인 것이다. 특사께서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를 항상 읊었다는 사실을 보면 열사의 최후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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