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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를 대하는 유학자의 공부법
    철학/동양철학 2023. 7. 26. 21:55

     

    불교를 대하는 유학자의 공부법

    1.

    이황이 <연평(이통) 답문(延平答問)>을 읽고 놀라다.

    1543년 퇴계 이황은,

    국왕 중종(中宗)의 부름을 받고 홍문관에서 『주자대전(朱子大全)』의 교정에 참여했다. 이 무렵 퇴계는 주희의 글을 열심히 읽고 또 읽었다.

    십여 년이 지난 1552년,

    어느 날 이황은 주희가 자신의 선생 연평 이통(延平 李侗:1093-1163)과 주고받은 편지를 엮어서 만든 『연평 답문(延平答問)』이란 책을 처음으로 읽고 깜짝 놀랐다. 이 책을 읽은 이황은 마치 장님이 눈을 뜬 것 같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얻어 마신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延平答問後語」).

    어떤 점이 주자학을 오랫동안 공부한 퇴계 이황을 놀라게 한 것일까?

    그는 이 책이 매우 어렵지만 연평 이통의 가르침 덕분에 유학[吾學]과 불교[禪學]가 동일한 것 같지만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延平答問跋」).

    그는 주희가 연평을 만나기 전에 석노지간(釋老之間),

    즉 불교와 노자의 학문에 출입했는데 연평의 가르침을 받은 후에 비로소 유학의 대도를 밝혔다고 보았다(上同).

    연평 이통은 중국 북송시대 도남학(道南學)의 전통을 이은 사람이다.

    그는 고요할 때의 정좌 공부를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황은 정좌하면서 고요한 가운데 평정한 마음을 지키는 이통의 정좌구중설(靜坐求中說)을 불교의 공부와는 다른 것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연평이 공부에 힘쓴 구체적 순간이 일용수작과 동정어묵 사이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延平答問跋」 “其用功親切之處, 常不離於日用酬酢動靜語默之際”].

    이통은 고요할 때 정좌를 중시한 사람인데 제자 주희와 대화할 때는 항상 평소 자신이 겪고 체험하는 일상의 순간[日用事]에서 공부할 것을 강조했다.

    이황은 이 점을 눈여겨보고 이통이 주희에게 전한 공부가 고요함과 움직임동정을 관통하는 경(敬) 공부의 핵심을 잘 지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退溪先生文集』 卷 28, 「答金惇敍」].

    2.

    불교와 다른 유학의 공부법

    이들이 염두에 둔 불교와 다른 유학의 공부법이란 무엇일까?

    『연평 답문』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건넨 가르침의 일단을 살펴보자.

    주희는 사촌 동생의 죽음이 괴로워서 마음속 회한을 없앨 수 없다고 호소했다.

    평소 부모와 어른을 모실 때 공경하는 마음을 계속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토로하였다. 이통은 제자의 마음에 한 덩어리의 사의(私意)가 가득 차서 밝고 훤한 도리의 모습을 간파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선생이 제자에게 괴로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유심히 살피라고 권유한 점이다

    (『延平答問』67조목).

    부모에 대한 공경이 사라지고 고단함만 느껴질 때 바로 이 지점에서 조용히 마음의 본원을 잘 살펴서 회복하기를 권유했다.

    이때 이통은,

    선학(禪學)을 하는 자는 마음에 병이 있어 괴로우면 그 상념을 끊어버리고 더는 그 때문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것은 유자(儒者)가 사태에 나아가 괴로움의 실마리를 조리에 맞게 푸는 것과는 다르다고 하였다.

    3.

    선배 유학자 사상채(謝上蔡)와 그의 선생 정명도(程明道, 程顥)가 주고받은 대화

    『맹자』「공손추(上)」에는

    일에 관심을 갖고 노력할 때 그 결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고 그렇다고 잊지도 말며 억지로 조장하지도 말라[“必有事焉, 而勿正心, 勿忘, 勿助長”]는 경구가 나온다.

    이통은 맹자의 이 구절을 두고,

    선배 유학자 사상채(謝上蔡:1050-1103)와 그의 선생 정명도(程明道, 程顥:1032-1085)가 주고받은 대화를 주희에게 전한다(『延平答問』60).

    상채는 괴로움을 잊어버리는 법을 잘 배워서[習忘] 삶을 기르려고 노력했다[養生].

    명도는 그것이 개인적 양생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타인과 함께 사는 도(道)의 길에는 해롭다고 우려한다(『上蔡語錄』 卷上).

    정명도는 괴로움을 잊어서 자기 삶을 잘 꾸리는 자는 정(情)을 남겨두지 않는 자라고 했다. 하지만 유학의 도를 배우는 자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명도의 요지다.

    그는 상채에게 평소 일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사태에 마음을 두지 않을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맹자가 말했듯이 사태가 발생할 때 미리 결과를 기필해서도 안 되고 그것을 방관해서도 안 되며 억지로 조장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마주한 그 괴로운 사태를 무심히 잊어버리고 끊어낼 수는 없다는 말이다.

    명도는 상채에게 성인의 마음은 거울과 같기 때문에 불교의 마음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上蔡語錄』 卷上. “聖人心如鑑, 所以異於釋氏心也”].

    사실 거울 비유는 불교 선사들이 애용한 것이다.

    거울 그 자체와 거울의 밝음, 거울에 비친 무수한 상들을 구분하면서 마음의 작용 원리를 풀이한 것은 선사들이다. 명도가 석 씨의 마음이 거울과 같지 않다고 경계한 것은 불교도들이 인위적으로 마음의 고통을 끊어서 인륜 관계의 도를 해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명도의 발언을 인용한 연평 이통은 인륜 관계의 이치를 ‘인(仁)’으로 설명한다. 그는 인(仁)이라는 이치가 나와 너, 피차의 구별이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延平答問』41).

    이치에 부합되어 사심이 전혀 없는 마음[無私心]이 인(仁)이라고 하였다.

    나와 너를 연결하고 소통시키는 인(仁)이라는 이치,

    이 도리가 환히 드러나는 것을 보기 위해 정좌도 하고 함양 공부도 했다.

    불교의 사성제(四聖諦), 고집멸도(苦集滅道)는,

    마음의 고통과 고통의 원인인 집착을 없애기 위한 싯다르타의 가르침이다.

    나라는 자아의 실체, 고착된 자의식을 부정하는 무아(無我)의 가르침은 결국 나를 괴롭히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이다.

    4.

    연평 선생이 주희에게 일러준 뜻

    그런데 유학자 이통은 무아가 아닌 무사심을 말한다.

    그리고 사심이 없다는 것은 나와 너를 연결하는 인의 도리가 드러난 것이다.

    이통에게 이것은 관계의 온전한 회복을 의미한다.

    북송시대 유학자들이 인(仁)을 피차의 구분을 넘어선 만물 일체(萬物一體)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연평 답문』에서 이통은 남과 나 사이에 막힘[固滯]이 생길 때,

    내외가 단절되어 상통하지 못할 때,

    나와 사태를 쇄락(灑落)하고 융석(融釋)하게 풀어주는 도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정좌하여 마음을 수습하고 고착된 지점을 조용히 응시하면 점차 지각이 밝아지면서 도리가 드러난다고 했다(『延平答問』52).

    이통은 주희에게 마음을 지키고[持敬] 함양하는 공부가 익숙해지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도리가 발생한다고도 말했다(『延平答問』32).

    정좌와 함양을 말하는 유학자들은 믿는 구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함양할 만한 본원이 있다는 믿음이다.

    그 본원이 드러난 좋은 사례가 새벽녘 평단지기(平旦之氣), 맹자가 말한 야기(夜氣)가 보여주는 마음의 선한 기운이다(『延平答問』22).

    이통은 바로 이곳에서 마음을 보존하는 함양 공부를 시작하면 억지로 밖에서 통제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마음과 이치[仁]가 하나가 되고, 나와 타인 사이가 패연히 뚫리는 융석의 상태에 이른다고 보았다.

    5.

    이황이 깨달은 이치

    이황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다.

    그는 연평이 말한 도리가 곧 일상생활, 일용처(日用處) 모든 곳에 있다고 말한다

    (『退溪先生文集』 卷 14, 「答南時甫」).

    도리는 고원하고 신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응접하는 관계의 모든 순간에 있다.

    타인과 만날 때 호연히 소통하면 그것이 도리이고 인(仁)이다.

    만약 사태와 갈등하고 남과 가로막히면 나는 조용히 마음을 수습하여 꽉 막힌 사의(私意)를 뚫고 내외를 이어주는 도리를 자각해야 한다.

    정좌와 함양은 고요한 수렴 가운데 이 본원의 도리가 회복되기를 간구하는 공부다.

    이황은 남언경이 담일청명(湛一淸明)한 마음의 본체를 찾겠다고 의지도 욕망도 없애는 무의・무욕(無意無欲) 공부에 힘쓰는 것이 도리어 선미(禪味)를 띤 불교적 태도라고 우려했다(上同).

    정(靜)에 치우쳐 억지로 이치를 찾는 것은 알묘조장(揠苗助長), 강제로 싹을 뽑듯이 심력을 소진하는 잘못된 공부라는 말이다.

    “성인이 고요함[靜]을 위주로 한 것은 세상의 움직임[動]을 한결같이 운영하기 위함이지 구체적인 일을 쓸모없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니다. 배우는 자가 고요함을 구하는 것은 수많은 행위의 근본을 세우는 것이니 막연히 사태에 응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아니다.”

    (『退溪先生文集』 卷 42, 「靜齋記」)

    유학자 이황은 동(動)의 세계, 타인과 만나는 인륜 관계에 주목했기 때문에 고요함[靜]의 공부, 정좌와 함양을 소중히 여겼다.

    고요함은 나와 타인을 연결하고 살리는 힘, 인(仁)의 도리를 회복하는 순간이다.

    그에게 불교의 참선은 나를 잊음으로써 고통을 끊으려는 노력으로 비췄을 것이다. 그곳에는 도리를 자각하는 내가 없다. 내가 없으므로 결국 참선도 무아에 이르는 방편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학자에게 정좌의 고요함은 방편이 아니라 동의 세계, 관계를 복원하고 살려내는 중요한 자산이다. 동이 중요하므로 정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황은 양자를 함께 하는 공부를 경(敬) 공부라고 했다.

    6.

    결어

    이황은 일상에서 본원을 회복하는 유학의 공부를 『연평 답문』 속 주희와 스승 이통의 대화에서 찾았다. 부산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고요한 마음자리, 평정심을 지키는 것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속의 성시(城市)에 처해도 대현(大賢)은 자신이 지키고 즐거워하는 것을 잃지 않으며, 큰 은자는 성시(城市)에 처하니 반드시 세속을 떠나 산림(山林)에 집착하지 않는다."

    (『退溪先生文集』 卷 10, 「答李仲久」).

    고요함에 통달한 자는 가장 시끄러운 성시에 머문다.

    얽히고설킨 세상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타인과 함께 가는 길, 도리를 믿기 때문이다. 인(仁)은 작은 나의 마음을 벗어나 크게 성장한 나를 만듦으로써 세상에 나가도록 추동하는 힘이다.

    새로운 세상에서 더 풍요로운 관계를 생성하는 것, 그것이 동정을 아우르는 공부가 추구했던 희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은 처음에 불학에 입문하였던 주희가 연평 이통 선생을 만나면서 유학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이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글인 <백 민 정(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의 "불교를 대하는 유학자의 공부법"을 편집한 것이다.

    #敬공부,

    2023년 7월 26일

    가욕(可欲) 신희철이 정리하다

    [출처] 주희는 연평 선생에게 듣고, 이황은 여기에서 경(敬) 공부를 요약하였다.|작성자 skyp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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