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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종의 문학잡설(18)] ‘사무사(思無邪)’ 3
    경서/시경 2023. 5. 8. 23:57

     

     요즘 젊은 세대는 『시경』, 『시경』이라 하여도 모를 것 같고, 안다고 하더라도 고전이긴 하지만 고리타분 옛 책이라 여기며 짐짓 거리를 둘 것 같다. 공자가 편찬한 시집이란 사실을 알면 오히려 잘못된 선입견을 지닐 것 같기도 하다. 『시경』의 시를 온통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는 교설(敎說)로. 전통을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온고, 그 대상으로 인정하기는 하며 성장했던 우리 세대도 그랬으니 할 말 없다. 아니다. 그야말로 선입견인가. 

     『시경』에 수록된 시들의 주제는 다양하다. 청춘 남녀의 애정, 정치 풍자, 조상의 공덕 찬미, 노동의 고충, 전쟁의 참상 등 인간의 여러 보편의 삶을 다루고 있고, 경직된 교조(敎條)를 벗어난 넓은 차원의 휴머니티와 관련 정서가 있다. 『시경』의 시를 읽는다면 당장 선입견을 수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자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인간 공자의 모습까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근년에 대중을 위해 요즘 우리말로 잘 번역한 시경 번역서가 많이 발간되었다. 먼저 연정(戀情) 시를 소개한다.  

    野有死麕(야유사균) 저 들판에 있는 사냥한 노루를

    白茅包之(백모포지) 하얀 띠풀로 꼭꼭 싸매네

    有女懷春(유여회춘) 봄바람 난 저 처녀를

    吉士誘之(길사유지) 멋진 남자가 유혹하네

    林有樸樕(임유박속) 숲 속에는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野有死鹿(야유사록) 들판에는 사냥한 사슴

    白茅純束(백모순속) 하얀 띠풀로 꽁꽁 묶어

    有女如玉(유여여옥) 옥처럼 아름다운 처녀에게 선사하네

    舒而脫脫兮(서이탈탈혜) 아,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천천히,

    無感我帨兮(무감아여혜) 수건도 건드리지 말고요

    無使尨也吠(무사방야폐) 삽살개도 짖지 않게요 

                                 - 「야유사균(野有死麕)」/유병례 역

     봄 들판, 남녀의 연출. 혹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훈시나 장면이 등장할까봐 우려(?)하였다면 ‘깜놀’일 것이다. 사슴 사냥에 성공하고 띠풀로 포장해서 처녀에게 선물로 건네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표정이었는지 또 처녀는 어떠하였는지 생략되어 있지만, 독자들은 잘 연상하면서 한때 혹은 앞날의 자신과 동일시할 것 같다. 그런데 4연에 이르러서, 반전 이상으로 분위기가 고조된다. 삼인칭 관찰자 화자의 1, 2, 3연 묘사도 흥미로웠지만 갑자기 화자가 대상 인물이었던 그 ‘처녀’로 바뀐다. 그 처녀가 작품을 찢고나온 듯 자신의 육성을 생생하게 직접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그런데 이 전환에 적응하기 전에 독자들은 그 처녀의 과감하고 대담한 심정 표출에 놀랄 것이다.  

     우리 중 누구는 처녀의 이 토로를 되바라졌다거나 앙큼하다면서 못마땅해 할 수 있을 것이기도 한데, 작중 정황을 두루 고려하며 그 심정을 인지상정으로 허용한 공자의 시각과 대조된다. 또 처녀의 그 심정에 내포된, 남에게 이 밀회가 들킬까 염려하는 처녀의 걱정도 공자는 양해하였다.      

    碩鼠碩鼠(석서석서) 황소 같은 쥐새끼야 황소 같은 쥐새끼야 

    無食我苗(무식아서) 내가 심은 벼 모종 뜯어 먹지 마라 

    三歲貫女(삼세관여) 오랫동안 너를 먹여 살렸거늘

    莫我肯勞(막아긍로) 내 고생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구나

    適彼樂郊(적피낙교) 나 이제 너를 떠나

    逝將去女(서장거여) 근심 걱정 없는 저 세상으로 가련다

    樂郊樂郊(낙교낙교) 저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세상에서

    誰之永號(수지영호) 그 누가 탄식하고 슬퍼하리오?

                              - 「석서(碩鼠)」 일부/유병례 역 

     파탄. 귀족들과 관리들의 수탈과 억압에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민초들의 원한과 절망이 처절하게 표출되어 있다. 추수한 곡식뿐만 아니라 ‘벼 모종’도 설 자리가 없는 이승. 그런데 ‘근심걱정 없는’ ‘저 새로운 세상’을 화자는 과연 믿었을까. 시각에 따라선 불온하기 짝이 없는 이런 토로도 공자는 인지상정으로 용인하고 조치하였다. ‘나쁜 기운이 있는 작품’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공자가 이 시를 왜 수록하였는지 그 까닭을 안다. 또 이런 시가 『시경』에 수록되지 않았다면 당대 조선 민초의 암담한 질고를 고발한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시편들도 지어지기도 어렵고 지어졌다고 해도 문헌에 실리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백골징포(白骨徵布), 황구첨정(黃口添政)을 포함해 삼정문란 세도정권 치하의 참상을 고발한 「애절양(哀絶陽)」이 그러하다. “舅喪已縞兒未澡(구상이호아미조)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할아버지 아들 손자 삼대 이름이 군적에 실렸다네/…/磨刀入房血滿席(마도입방혈만석) 남편이 칼 갈아 방에 들어가더니 피가 바닥에 흥건하고/自恨生兒遭窘厄(자한생아조군액) 아이 낳아 이 횡액이라고 원통히 부르짖네”. 「석서(碩鼠)」에 이어 이 시도 역시 ‘나쁜 기운이 있는 작품’이 아니다. 공자의 ‘사무사(思無邪)’는 개인 내면의 용의나 서정의 순정을 포함해 사회 차원 여러 국면의 정서에 이르기까지 이렇듯 범주가 넓다. 

    출처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http://www.suwonilb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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