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 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랫벌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이 '모란동백'은 이제하의 詩로써 작곡에 노래까지 혼자서 다 했다. 원래의 제목은 “김영랑,조두남,모란,동백”으로 1937년생인 그가 회갑기념으로 1997년에 내놓았다. 그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쓴 문학가 김영랑과 ‘선구자’를 작곡한 작곡가 조두남을 존경해서 이 詩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노래화된 이 시를 조영남이 리메이크하여 부르면서 지금의 ‘모란동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화가, 그리고 작곡가이며 가수이기도 했다. 정말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으며, 한국의 ‘밥 딜런’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을 사람이었다.
그는 1953년 경남의 명문 마산고에 입학하였는데, 당시 마산고등학교에는 시인 김춘수와 김남조, 시조시인 김상옥, 음악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등 쟁쟁한 인물들이 교사로 있었다. 문학적.예술적 토양이 매우 비옥하여 그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남쪽지방의 중.고교에는 히로시마 師大 출신 교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히로시마가 원폭으로 초토화되면서 그 학교의 학적부가 불타버렸는데, 이런 연유로 무자격 교사가 자신의 출신을 히로시마 師大로 둘러댔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당시 마산고에는 히로시마 師大 출신 대신 훗날 교과서에 등장하는 문화예술계 거목들이 재직하고 있었고, 이것이 천재 이제하에게는 큰 복이였던 것이다.
여하튼 이 '모란 동백'을 접하면 무척이나 감상적인 느낌이 든다. ‘세상은 바람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모란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말아요' 등등... 그러해서 그러한지 이 시를 노래로 리메이크해서 본격적으로 유행시킨 조영남은 자기가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꼭 이 노래를 장송곡으로 틀어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