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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孟子 告子下篇/天之將降大任於是人也
    경서/맹자 2023. 7. 10. 06:37

    孟子 告子下篇

    天之將降大任於是人也(천지장강대임어시인야)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장차 내리려 할 적에는

    必先苦與其心志(필선고여기심지)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勞其筋骨(노기근골)

    그의 힘줄과 뼈를 수고스럽게 하고

    餓其體膚(아기체부)

    그의 육신과 살갗을 굶주림에 시달리게 하고

    空乏其身(공핍기신)

    그의 몸을 궁핍하게 한다.

    行拂亂其所爲 (행불란기소위)

    (그리고는)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그가 하고자

    하는 바와는 (다르게) 더욱 뜻대로 되지 않게 하니

    所以動心忍性 (소이동심인성)

    (이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분발하게

    하고 (그의) 성질을 참고 견디게 하여

    曾益其所不能(증익기소불능)

    예전에 그가 능하지 못한 바를 더욱 잘 할 수 있게 함에 있는 것이다.

    맹자(孟子)의 말이다. 맹자가 지은 《맹자》라는 책의 고자하편(告子下篇) 말미에 나온다. 한문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천장강대임어시인장(天將降大任於是人章)' 혹은 간단하게 '동심인성장(動心忍性章)'으로 일컬어지는 글의 중간 부분을 발췌한 것인데, 이 글 바로 위에서 맹자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나 세상을 구제하는 반열에 올라선 걸출한 인물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기운이 없다가도 맹자를 읽으면 힘이 불끈 솟곤 하는데, 특히 이 글은 예로부터 각종 고난에 시달리고 핍박받는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 준 격조 높은 문장으로 꼽혀 온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서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다독거리며 각오를 새롭게 다졌을까.

    하늘은 왜 그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것일까. 어쩌면 자신의 뜻을 대신 행할 수 있는 인물의 자격을 검증하기 위하여 시험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감내하기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통과한 사람들을 뽑기 위한 하늘 특유의 시험 과정이라고 본다면 무리한 해석일까.

    사람이란 혹독한 시련 속에서 뼈저리게 반성을 해야만 온갖 기만과 허위와 집착과 편견에 물든 속물 근성을 씻어내고서 원래 태어날 때 품부받은 하늘의 본래 성품을 회복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맹자는 믿고 있다. 그리하여 조그마한 자아(自我)에서 큰 자아로 자신의 의식과 존재의 지평을 확장하여, 이른바 대인(大人)으로서 하늘의 뜻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맹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몇천 도의 용광로와 차디찬 물 사이를 수없이 오가며 담금질을 당하고, 쇠망치로 무수히 두들겨 맞은 끝에 탄생하는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명검처럼, 온갖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맛보며 자기 고문(自己拷問)과 순금의 정련화(精鍊化) 과정을 거친 뒤에 하늘의 인정을 받고서 천지 사이에 우뚝 서게 된 인물.

    하늘 사람이 된 그는 만인을 모두 평등하게 자기의 적자(赤子)로 여기고서 생성(生成)해 주는 하늘의 뜻을 몸받아, 민생 구제라는 하늘의 중대한 사명을 띠고 세상 속으로 뛰어 든다. 그는 이제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낄 줄 안다. 그에게는 너와 나를 구별하는 장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더구나 내편이니 네편이니 하는 패거리 의식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하늘의 시험이라는 것이 과연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일까. 가족 혹은 국가와 민족에게도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그 동안 세계의 역사를 살펴 보면 자기 민족과 국가의 우월성을 내세우며 하늘로부터 천부적으로 선택받았다고 하는 이른바 선민(選民) 의식을 고취한 경우를 적지 않게 볼 수 있고, 그러한 현상은 오늘날까지도 온존(溫存)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하지만 하늘의 시험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좋아할 일은 아니다. 시련을 받은 그만큼 성숙해지지 않는 이상, 그것은 헛고생을 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민 의식을 앞세우면서 우쭐댄다는 것은 더더욱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적어도 맹자가 말하는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별도로 선택한 백성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야곱의 자손 유태인은 일찍이 바빌론 유수(幽囚)라는 치욕의 역사를 겪은 위에, A.D. 70년 로마의 장군 타이터스에 의해 멸망을 당한 뒤로 약 1천 구백 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떠돌아다니다가 열강의 힘을 등에 업고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다시 세웠는데, 현재 전개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도 숱한 고난의 역사를 거쳐 왔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하늘의 시험을 통과했는가, 아니면 지금도 시험을 받고 있는 중인가. (글쓴이 / 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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